Manna 24

유머러스한 하나님의 인도 ‘식당인 줄 알고 간 곳이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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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유머러스 하시다. 우리를 찾아오시는 길도 다양하다.  수학 공식같이 따분하지 않다.  누군가는 봄날 나무 그늘아래 평온함으로, 누군가는 격량의 폭풍 속에  손을 내미신다. 또 누군가는 유쾌한 웃음을 지으며 다가오신다.  세 번째에 해당하는 만남을 가진 남정구 하워드한인회장이자 남스 태권도장 사범과 인터뷰를 했다.

남정구 회장은 30년 전 군대를 마치고 20대 중반을 넘어 미국에 이민을 왔다. 이미 가족들이 미국에 이민 온 후 나중에 온 경우다.   그 당시 메릴랜드에는 한인들이 많지 않았다. 그리고 주 활동무대도 지금처럼 하워드 카운티가 아닌 볼티모어 , 타우슨대학 근처였다.  남 회장은 주일이면 친구들과 만나 운동이나 볼링을 치며 지냈다. 그러던 어느 주일 약속이 흐지부지 해지며 각자 흩어졌다.  셀폰이 없던 시절이었다.  이왕 나온 김에 식사나 하고 가자라는 생각에 타우슨 근처에 있다는 서울식당을 찾아 나섰다.  마침 한국사람들이 많이 가는 곳이 보였다.  그곳이 식당이려니 하고 따라 갔다. 입구가 아주 좁았다.  입구 끝쪽에 가니 남자분이 주보를 나눠 주고 있었다. 그 때서야 이곳이 식당이 아닌 교회라는 것을 알았다. 다시 돌아가려니 입구가 좁아 그것도 쉽지 않았다. 밀려서 앞으로 가서 주보를 받았다. 주보를 나눠주시던 분이 오늘 처음 오셨냐고 물었다.  아니라고 했다.  왠지 처음이라고 하면 많은 관심을 가질 듯 해서였다. 그 전까지 교회를 다닌 적이 없었다. 그 날 실수로 처음 찾아간 것이다.  그곳은 볼티모어장로교회였다.

어떻게 교회와 식당을 구분 못하냐고 하셨는데, 당시 볼티모어장로교회가 새로 예배당을 지으며 임시처소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었다.

나는 실수로 찾아간 교회에 다음 주에도 또 찾아가 예배를 드렸다.  이영섭 목사(현 원로목사)의 설교가 귀에 쏙쏙 들어왔다.  당시 나는 태권도 도장을 열고 얼마되지 않아 심적 부담이 있었다. 그런 자신의 처지를 알고 있듯이 이영섭 목사는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 어떻게 쓸 것인가? 라는 주제로 설교를 했다.  말씀을 들으며 나에게 주신 태권도라는 달란트를 어떻게 써야 되는가를 생각하며 지금의 어려움 넘어  희망을 보게 됐다. 이후 6개월 정도 임시처소에서 예배를 드리고 지금의 예배당으로 이전을 한 후 1년 정도 다니다 이영섭 목사를 만나 정식 등록을 하고 교회에 다니겠다고 말했다.   당시 절에 다니시는 아버지를 찾아가 교회에 정식 등록을 하고 다니겠다고 말씀을 드렸다. 아버지는 종교의 자유가 있으니 그리하라. 다만 우리에게 교회에 가자는 말을 하지 말라 고 못을 박았다.

지금도 기억하는 에피소드가 있다. 당시 한인들이 많지 않았다.  교회에 대학부 청년부가 같이 있었는데  19살 대학 신입생부터 자신같이 서른 살이 넘은 청년 서너명이 함께 있었다. 10년이 넘는 나이차이로 구성원들간에 불편함이 있어 나중에 청년 1, 청년2로 나눴다. 정작 우리보다 19살 어린 친구들이 우리에게 오빠 라고부르는 것을 주변에서 더 어색해 하셨다.  노총각들이 결혼으로 장년으로 옮겨갔다.

고난 속에 하나님과의 친밀함이 높아졌다.  인생에 두 번의 고비가 있었다.  한 번은 교통사고를 당하고 하반신을 못 쓴 적이 있다. 태권도 사범으로 운동을 하던 나에게 큰 시련이나, 재활치료를 받고 나았다. 다시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린날 절로 감사가 나왔다. 내 발로 걸어와서 예배를 드린다는 것이 감사라는 생각을 했다.  내 인생에 가장 큰 어려움은 아마 6년 전 도장을 옮길 때 인거 같다.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 보다 심적으로 더 큰 부담이 왔다. 교통사고는 나의 의지로 몸을 낫게 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도장의 어려움은 도장과 우리 가정 모두가 무너지는 것 같았다. 처음으로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반면 하나님을 가장 간절히 찾은 시간이기도 했다. 사방이 막혔다고 여겨질 때 정말 의지할 곳은 하나님 밖에 없었다.  새로 옮겨 갈 도장은 찾았으나 현실적으로 렌트가 될 확률은 거의 없었다. 기도하기로 했다. 매일 밤 자정이 넘은 시간 도장 예정지 뒷문 앞에 가서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 도장만 열게 해 주시면 정말 열심히 하겠다고 간절히 매달렸다.  기도반 눈물반이었다 이후 거짓말 처럼 도장을 얻게 됐고 또 거짓말처럼 렌트비를 채워주셨다. 여유롭지 않았지만 렌트비를 내야 될 때면 생각지도 않게 회원 부모가 선불을 내거나 새로운 회원이 찾아와 약속을 지키게 했다.   그런 와중에도 나의 마음을 시험하는 것이 하나 있었다. 전기세다. 청구서가 오지 않았다. 렌트비를 겨우 내는 형편에서 전기세까지 나오면 힘들다는 생각으로  먼저 연락하지 않고 BGE에서 연락이 오면 내리라하고 불편한 마음으로 미뤄놨다. 그러나 때에 맞춰 공급하시는 하나님을 만나며 더 이상 미루면 안되겠다는 마음이 들어 회개하고 먼저 연락했다.  다음날로 특별 조사단이 나와서 1만 3천 불의 청구서가 나왔다. 당장 낼 수 있는 금액이 아니었다.  2년간 나눠서 밀린 전기세를 다 냈다.

솔직히 기도를 잘하지 못한다. 특히 대표기도를 시키면 여전히 식은 땀이 난다. 그러나 나는 기도원에 가서 기도하는 것을 좋아한다.  기도원 산 속 여기 저기 방언기도 하는 사람, 부르짖는 기도를 하는 사람들에  쌓여 나도 맘껏 기도한다.  나의 서툰 기도를 외면치 않으시고 나를 품어주시고 다시 세워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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