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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의 아픔 4.3사건 70주년 워싱턴에서 평화세상으로 나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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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주일 주교가 평화공감 포럼을 진행하고 있다.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워싱턴협의회(회장 윤흥노)는 4일 엘리콧시티 소재 성요한 성공회 교회에서 강우일 주교 초청 ‘ 4.3사건과 현대사의 아픔을 넘어 평화의 세상으로’ 평화공감 포럼을 가졌다. 이날 워싱턴 인근의 가톨릭신자와 한인들이 대거 참석해 그동안 역사 속에 존재하나 잊혀지고 침묵되어져야 했던 4.3사건의 실체를 70주년에 워싱턴에서 나눴다.

강주일 주교

강주일 주교(제주 교구)는  4.3사건은 우리 국민이 잘모르는 복잡한 역사의 아픔이 있다. 현대사의 첫번째 상처이고 매듭이다.  이는 3.1운동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1919년 3월 1일 비폭력으로 일본군에 맞선 3.1운동은 7,000여명이 죽고, 4만 5천여명이 부상을 당했다. 그리고 5만여명이 체포된 실패한 운동이다. 그러나 이는 조선의 시민들에게 새로운 의식을 갖게 했다.  처음에 학생과 교사를 중심으로 시작해 시장상인과 노동자, 나중에는 기생들까지 거리로 나와 만세를 부르게 됐다.  이는 일반시민들의 영혼에 불을 질렀고 이후 본격적으로 항일투쟁운동이 시작됐다.  4월 11일 상해임시정부를 시작으로 연해주, 중국, 미국에 항일운동과 독립군이 조직돼 일제 강점기 동안 국내외에 자극이 됐다.  또한 1925년 제주와 오사카 항로를 통해 제주도민 ¼이 일본 공장, 탄광에 노동자로 나가 일을 했다.  이들은 노동현장에서 당한 민족차별로 인해 강한 조국애와 항일저항의식이 높아졌다. 일본이 패망한 1945년 8월부터 1946년 일본에 있던 5-6만명이 제주도로 귀향했다.  그러나 일본속국에서 벗어나 귀향한 이들을 기다린 것은 대흉작으로 인한 식량난과 일자리 부족이었다. 당시는 미군정 임시지배 체제(하지 장군)가 유지됐다. 미군정은 제주도를 일본영토의 한 부분으로 여기고 점령했다. 이들은 민정을 지혜롭게 할 준비가 없었고, 여기에 경제적 혼란까지 가중됐다.  미군정은 도민들에게 일본의 배급경제에서 시장경제를 권장했으나 흉작으로 인한 도민들의 경제는 더욱 바닥을 쳤다. 여기에 군정은 싼값에 쌀을 사서 비싼 값에 판매하는 매점매석에 나서 민생고는 더욱 심해졌다.

1947년 3월 1일 제주도민 3만여명은 28주년  3.1절 기념식을 위해 모였으나 심리적 공황상태속 분노가 폭발했다. 미국이 우리를 해방시킨 줄 알았는데 일제보다 더 어렵다며 분노했다.  경찰은 이들을 해산시키기 위해 군중을 향해 발포를 하고 이로인해 6명이 죽고 8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또한 1년 뒤인 1948년 4월 3일 좌익계 청년들은 가만히 있어도 죽으니 싸우자 며 제주 전역 지소 12 곳을 습격했다. 이에 미 군정은 제주도를 Red Island라며 진압에서 토벌(무차별 무력살상)로 전환해 민간인 희생자가 급증했다.   또한 좌익계 청년들이 제주지역사회 여론을 주도하며 유엔한국위원단이 남한 단독선거를 실시해 정부를 수립한다는 결정에 반대했다. 우리 민족의 하나의 정부수립을 요구하며 결사반대했다.  그결과 5.10선거에서 제주도만 선거무효처리가 됐다. 그러나 1948년 8월 15일 남한단독정부가 수립되고 이승만이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미군정과 이승만 정부는 한미군사협정을 맺어 한국군의 지휘권이 미군에 귀속됐다.  이후 1954년 9월  21일까지 발생한  무장대와 토벌대 간의 무력충돌에서 많은 주민이 희생을 당했다.  제주도민들이 최근까지도 입에 담거나 생각하는 것조차도 힘들어하는 서북청년단 (평양 공산당에 당한 사람들로 빨갱이 토벌단)이 경찰 군복으로 갈아입고 지독하게 탄압했다. 이들은 동족에게 할 수 있었을까 싶은 만행을 자행됐다. 이들에 대한 기억은 여든이나 아흔이 되어가는 이들에게도 여전히 몸서리 처지는 존재다.  또한 여순항쟁은 1948년 10월 19일 제주도 토벌명령에 불복해 도발적으로 일으킨 사건이다. 사전계획이 없었다. 40여명의 병사들이 상부명령에 승복할 수 없어 봉기했다. 이후 14연대는 지리산으로 퇴각해 빨치산이 됐다.

강 주교는 4.3사건이 대한민국에서 알려진 것이 2000년 대로 50년간 말을 하거나 연구를 할 수가 없었다.  대한민국 국민의 90%가 모르고 있으며 지금의 미 행정부와 의회에서도 전혀 모른다.  지난 5년 간 미 학자들과 공유하면서 일을 하고 있다. 4.3사건을 다룬 600여 장에 달하는 보고서를 만들었다. 이것은 증언과 사료들 12권의 책을 1권으로 만든 것이다.  지난 2013년 미 상하원에서 볼 수 있도록  600여장으로 요약한 4.3진상보고서를 전달했다.

결론적으로 4.3사건은 미 군정이 깊이 개입한 사건이나 미국은 이에 대해 전혀 이해가 없다. 이를 알리고 미주한인들은 지역구 의원들에게 이에 대한 진상조사를 요구해 정식답변을 들을 것을 당부했다.

노래패가 ‘잠들지 않는 남도’를 부르고 있다.

강우일 주교는1995년 3월부터 1998년 2월까지 통합 가톨릭대학교 초대총장을 역임했다.  천주교 주교회의 상임위원, 선교사목주교위원회 위원장, 민족화해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한국 교회의 민족 화해와 일치를 위한 노력에 박차를 가하며 민족의 평화와 일치를 위한 활동을 해오고 있다.

이날 평화공감포럼은 양영준 씨의 사회로 윤흥노 워싱턴회장의 인사말, 이완홍 신부의 환영사, 류은헌 (교육홍보 위원장)의 주교소개, 강연, 2부 질의응답시간은 이재수 간사의 사회로 노래패의 축하노래’잠들지 않는 남도’와 정현숙 위원의 시낭송이 진행됐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 3:16).
For God so loved the world that he gave his one and only Son, that whoever believes in him shall not perish but have eternal life. (John 3:16 N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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