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말씀을 복음이라고 한다. 말 그대로 복된 소식이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복된 소식의 주체인 예수님을 믿고 복 받기 원한다. 그러나 때론 사람들이 기대하는 그 복이 너무 정형화가 되어 권력을 갖거나, 유명해지거나, 부자가 되어야만 “예수 믿고 복받았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그리고 그 동일한 복을 나도 받으려면 더 기도하고, 더 노력하고, 더 매달리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기게 된다.
그러나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가장 잘 묘사한 구절로 꼽히는 골로새서 1:15~20의 말씀에 비춰보자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는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씻어주시고, 깨끗하게 된 우리들이 예수님과 화목하게 되기를 원하시고 기뻐하시기 때문이다. 크리스챤으로서 성공하고, 부자가 되고, 명성을 얻는 사람만 기뻐하시는 게 아니라, 때론 넘어지고 때론 부족해도 “괜찮아. 난 그냥 너 자체로 기쁘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정형화시켜버린 “누군가처럼 되어야” 예수님이 기뻐하신다고 믿는 “누군가의 예수님”을 내려놓고, 나의 삶 속에서 나 자체를 기뻐해주시는 “나의 예수님”을 만나야 한다.
Google에서 “예수님 얼굴”을 검색하면 나오는 다양한 사진들 중 우리들에게 가장 익숙한 사진은 1940년 워너 샐먼이 그린 “Head of Christ”라는 작품이다. 전 세계적으로 5억점 이상이 팔렸고, 한국엔 6.25전쟁 때 파병 온 미군에 의해 퍼지기 시작했으며 지금도 한국 크리스챤들에게 예수님 얼굴이 어떻게 생겼냐고 물어보면 압도적 다수가 이 이미지를 떠올린다.
만원짜리 지폐에 세종대왕을 그린 화가로도 유명한 故 김기창 화백은 유년시절 장티푸스로 인해 청력을 상실했지만 독실한 크리스챤으로 성장하며 자신의 미술적 재능을 바탕으로 자신이 만난 예수님을 그렸다. 한국인인 자신을 만나준 나의 예수님을 한국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리고 그 제목을 “갓 쓴 예수”로 붙였다. 유명 화가의 새 작품에 대한 평은 어땠을까? 기독 미술인들로부터 이단 취급을 당했다. 그것도 아주 강력하게. 그 이유는 예수님은 파란 눈에 코가 오똑하며 멋진 수염이 난 백인의 모습이어야 하기에 김기창 화백의 저 예수는 진짜 예수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1950년대의 보수적인 교계 풍토나 예수님의 외모에 대해 신학적으로 논쟁하자는 것이 아니다. 이 두 그림을 통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내가 나의 삶에서 만난 나의 예수님은 다른 사람들이 만난 그들의 예수님과 다를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쌍둥이일지라도 다른 삶을 사는데,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어떻게 획일적인 예수님을 만날 수가 있을까? 지금도 많은 크리스챤들이 “예수 믿는 사람은 이래야 돼. 어떤 복을 받아야 돼~”라는 나름의 정답을 정해놓고 그 틀을 벗어나면 마치 참 신앙인이 아닌 것처럼 간주하곤 한다.
예수님의 탄생을 기념하며 나 개인에게 예수님은 어떤 분이신지 깊이 묵상해보는 크리스마스가 되길 소망한다. 나의 삶은 다른 사람의 삶과 동일하지 않다. 그렇다면 나를 만나주시는 나의 예수님도 나에게 다른 방식으로 역사를 하실 수 밖에 없다. 내가 서 있는 곳에서 대단하던 소소하던 상관없이 주님의 기쁨이 되려고 노력하는 모습. 예수님은 그 모습 보며 흐뭇해 하시려 이 땅에 오셨다.
메리 크리스마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 3:16).
For God so loved the world that he gave his one and only Son, that whoever believes in him shall not perish but have eternal life. (John 3:16 N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