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na 24

나의 American 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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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살아 온 나의 이민생활이지만 어느 순간의 일들은 먼후일 메릴랜드주 한인 이민역사의 한토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이민 일세들과 함께 지낸 삶의 희비애락으로 주름진 모습들과 45년 동안 앞만보고 달려온 나의 인생에 수많은 일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1975년 8월 24일 우리부부는 6살된 딸과 4살된 아들을 데리고 American Dream을 이루고자 시작한 미국생활이 벌써 반 백년이 다 되었다. 한국에서는 엘리트 직장 생활을 한 난 이민초기 식당 청소부터 시작해서 바느질 공장을 다니는동안 아무도 나를 아는 사람이 없는 미국생활이지만 남이 나를 알아 볼까봐 자신을 부끄러워 한 시절도 있었다.

그 후 메릴랜드한인회, 전 볼티모어봉사센터, 전 볼티모어노인회 사무장을 거친후 시작한 사업으로 옷가게, 케리아웃, 리쿼스토어, 그로서리 등 젊은 시절에는 돈 버는 일이면 무슨 일이든지 몸을 아끼지 않고 일하면서 한국을 떠날때 우리나라의 가난을 자식들에게 되물림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으로 하루 12시간을 거의 30년동안 쉬지 않고 일을 했었다.

이민 초기 유일하게 우리가족만 이민을 왔기 때문에 서툴은 미국생활에 어려움도 많았고 무척 분주했었다. 1980년대에서 1990년대에는 향당 백윤문 시아버님 그림 전시회를 비롯해서 무궁화 나라꽃 알리기 전시회를 미국 전 대법원장 워렌버거씨를 모시고 열었으며, 장학기금모금 전시회 등 미전역에서 그림과 도자기 전시회를 수차례 열면서 모국의 문화를 미 주류사회에 알리는 행사도 여러차례 했었다.

볼티모어 시내에서 25년 동안 그로서리를 하면서 트럭을 몰고 물건도 하러 다녔고 서너번의 권총강도도 당했고, 눈이 오면 가게에서 뜬눈으로 새우잠을 자기도 했고, 불량배들이 가게를 부수는 일도 일년에 수 차례씩 있었다.  가게 앞 청소는 종업원들보다 나하고 남편이 먼저  주위를 깨끗이 하여 손님들과 좋은 관계를 갖으려고 노력했다. 작은 구멍가게에서 벗어나 보려고 white collar jobs 들을 상대하는 로비샾도 해보고 가게를 하면서 Coppin 주립대학 Language 코스도 수료했으며 부동산업도 시작한지 벌써 30년이 되었다.

이민초기 남자들은 한인사회에 봉사한다는 이유로 친구들과 어울려 만나는것이 유일하게 스트레스를 푸는일이었기에 남편(백준빈)도 전 볼티모어실업인협회 회장도 지냈고, 1988년도에 제 17대 메릴랜드한인회장을 역임하면서 도날드 쉐퍼 주지사 당시 메릴랜드한글운전면허시험을 법으로 통과하여 지금까지 한인들은 한글운전면허시험을 치룰수 있도록 메릴랜드교민들에게 혜택을 준것과 메릴랜드한인의날을 통해 볼티모어시내에서 88서울 올림픽 호돌이를 홍보하던일이 엊그제 같다.

1994년에는 여성들의 쉼터인 메릴랜드한인여성골프협회를 16명의 친구들과 창립하여 자랑스런 협회로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지난날 전 메릴랜드한인회장님들의 한인사회 사랑은 대단하셨다. 내가 주급 100불을 받고 있을때 메릴랜드한인회장을 3번 역임한 고 이영희 회장님이 만불을 메릴랜드한인회에 선뜻 기부하시는것을 보면서 나도 먼후일 한인들을 위해 멋진봉사를 할 수 있는 마음의 풍요로움을 갖는것이 꿈이었다.

지금도 가장 가슴 아픈일은 미국에 오자마자 가족의 생계를 위해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8살된 딸과 6살된 아들을 방과후에 베이비시터에게 맡기지도 않았고 방학이면 한국이나 미국에 있는 친지들에게 보내어 어린시절의 자식들과 함께 지낸  아름다운 추억이 없는것이 안타까운 일로 남아 있다. 돌이켜보면 아이들과 함께 대화를 하면서 돌봐줄 시간이 부족했기에 서로를 이해하기 보다는 아이들이 기대에 못 미치는 나의 욕심과 불만으로 쓴 잔소리만하는 부모로 불편한 관계일 때가 많았지만 지금은 딸과 아들이 잘 성장하여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있어 고마운 마음은 말과 글로 다 표현할 수가 없다.

70세가 넘어 다 늦게 겁없이 봉사했던 34대 35대 메릴랜드한인회장 당시 남편의 든든한 외조와 아들 딸 사위 며느리 온가족들과  한인회 행사때마다 쓰레기 수거를 기쁜마음으로 봉사해준 사랑하는 나의 best friend 어린 두손자와 함께 사회봉사를 할수 있었던 값진 추억은 가족끼리 서로 이해하며 사랑하고 협력하는  계기가 되어 너무도 감사했다.

지난해 14살된 손자들을 데리고 서울 덕수궁에서 열린 시아버님 그림전시회 초대전에 참석해서 백씨 일가들에게 손자들을 소개했을때는 감개무량하였다. 지난10년동안 아들 딸 가족들과 함께 여행을 다닌 멋쟁이 할머니 할아버지로서의 자존심과 명문과학고등학교에 입학한 친손자와 공부 잘하는 외손자는 나의 American Dream을 이루게 해주는 행복의 바이러스들이다.

나에게 잊을수 없는 특별한 일들은 한인회장시절 메릴랜드한인회가 제안을 하고 주지사 Larry Hogan께서 승인하신 40번 도로 선상 Ellicott City에 세워진 korean Way였다. 또한 교민전체가 합심하여 메릴랜드한인회관 기금모금을 하여 6만5천불의 모기지 빚을 갚던일, 평창동계올림픽을 홍보하던 일, 평소 메릴랜드한인회날 하루관객 2-3천명 행사를 2019년에 4만명이상을 동원했던 메릴랜드한인의날은 외국인들에게 자랑스런 Korean 의 파워를 알린 행사이며, 특히 기억나는일은 장소를 못구해 애쓸때 전 하워드카운티 군수 Allan Kittleman까지 함께 장소를 물색해 주었으며 대한민국의 위상과 권위를 외국인들에게 알리려고 노력한 메릴랜드한인회 자랑스런 차세대임원들의 참여와 인터넷홍보는 진정한 애국심을 발휘한 뜻깊은 봉사의 이벤트였다. 그리고 크고 작은 행사에 기꺼히 참석해준 주위 친구들의 진정한 우정은 잊을수가 없다.

정치에는 관심이 없는 나에게 우연한 인연으로 알게된 영부인 유미호건씨로 인해 2014년 한국사위 주지사 호건씨의 한인선거캠페인 위원장은 나에게 많은 추억과 보람을 주었다. 예비선거 당시 남편과 함께 하워드카운티 선거장소를 찾아 다니며 주지사후보 픽켓을 꽃고 다닌후에 집에 오면 밤 12시가 되었다. 남편이 나에게  우리가 이렇게 열심히 도와 주는데 호건씨가 꼭 당선이 될것이라고 위로를 해 주었다.

오랜 한인사회 인연으로 알게된 많은분들은 나의 인생에 보람과 봉사의 American Dream을 이루게 해 주신 소중하고 귀한 정말 고마운 인연들이며 오랫동안 힐링의 기쁨을 주신분들이다.

새댁이란 소리를 들으며 시작한 미국생활이 지금은 왕언니 할머니가 되었다. 요즘의 세월은 급행열차를 탄듯 빠르게 지나간다.  정말로 슬픈일은  쫓기듯 열심히 일만 하고 살던 가까운 친구들이 이미 세상을 떠난것이다. 서울에서의 생활보다도 더 오랜생활을 한 메릴랜드주의 볼티모어 주변은 이제 나의 정든 제2의 고향이 되었다.

새로운 나의 American Dream 은 이웃을 사랑하고 베풀며 감사하면서 참 좋은 사람들과 남은 황혼의 시간들을 멋지고 행복하고 보람있게 보낼수 있도록  건강한 노년을 맞이 하고 싶은 작은 바램이다.

백성옥 올림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 3:16).
For God so loved the world that he gave his one and only Son, that whoever believes in him shall not perish but have eternal life. (John 3:16 N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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