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na 24

훨씬 더 좋은 것과 더 필요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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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카시안이 쓴 담화론을 보면 당시 사해근처에서 살던 거룩한 사람들이 사라센 강도들에 의해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아주 큰 사건이었기 때문에 다 알려지게 되었고, 그 거룩한 무리들을 어디에 묻느냐에 대해서도 다툼이 이었습니다. 카시안은 당시에 탁월한 영성을 가진 테오도르 사부를 찾아갑니다. 그리고 심각하게 질문합니다. 그들의 질문은 이것입니다. “어찌하여 신앙이 깊은 거룩한 사람들이 불신자들에 의하여 살해되는 것을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입니까?” 오늘 날에도 이런 질문 많이 하죠? 신앙이 좋고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사람이 단명하여 일찍 사망하고 사고로 사망하는 것을 보면 하나님은 그 때 무엇을 하셨는지 의문을 품습니다. 왜 하나님이 막아주지 않았는지 의문을 갖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우선 사부 테오도르의 답변부터 들어 보겠습니다. 테오도르 사부는 이 세상에 존재 하는 것은 세 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1. 선한 것, 2. 악한 것, 그리고 3. 썩 좋지는 않은 것(썩 나쁘지는 않은 것). 선한 것은 무엇입니까? 영혼의 덕은 성실한 믿음에 의해 우리를 거룩한 실체들에게로 인도하며 쉬지 않고 불변의 선에 매달리게 합니다. 영혼의 덕 이외에 그 어떤 것도 선이라고 믿어서는 안 됩니다. 악한 것은 무엇입니까? 죄 이외에 다른 것을 악하게 여겨서는 안 됩니다. 죄는 우리를 선하신 하나님에게서 분리시킵니다.

썩 좋지는 않은 것이란 무엇일까요? 사용자의 의지와 욕구에 따라 진행방향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권력과 명예, 건강, 아름다움 이런 것들을 가진 사람이 선하게 사용하면 선이 되는 것이고, 악하게 사용하면 악이 되는 것입니다. 가난, 질병, 모욕은 어떨까요? 사람들은 다 악에 더 가깝다고 말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을 당한 사람의 욕구와 성품에 따라서 선한 것이 되기도 합니다. 삶과 죽음은 어떨까요? 보통 사람들은 삶은 좋은 것, 죽음은 악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테오도르 사부는 삶과 죽음도 썩 좋지는 않은 것이라고 말합니다. 세례요한의 탄생과 가룟유다의 탄생을 비교해 보십시오. 많은 사람들이 세례요한의 탄생을 기뻐하였습니다. 그러나 유다에 대해서는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제게 좋을 뻔하다(마26:24)” 고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세례 요한은 목 벰을 당했습니다. 단명했습니다.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나요?”그의 경건한 자들의 죽음은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귀중한 것이로다.(시116:15)“ 세례요한의 죽음은 주님께 귀중한 것입니다. 그러나 유다나 그를 닮은 사람들의 죽음에 대해서는 무엇이라고 말하는가요?”악인은 그 악함 때문에 끝내 죽음을 맞고..“(시34:21). 즉 행위의 결과가 아니라 행위자의 성향 때문에 영생을 받든지 벌을 받는다고 말합니다. 테오도르의 답변은 성경에 근거한 탁월한 답변입니다.

지금까지는 삶과 죽음에 대한 테오도르의 식견이었습니다. 삶과 죽음에 대한 사도 바울의 식견을 들어볼까요? 바울은 친히 경험한 바를 말하고 있으니까 훨씬 우리 피부와 와 닿을 것입니다. 바울은 지금 감옥에서 사형선고를 받으면 죽음을 당할 수도 있고, 무죄선고를 받으면 살 수도 있는 상황입니다. 바울에게 죽음이란 무엇인가요? 삶이란 무엇인가요? 바울에게 죽음이란 훨씬 더 좋은 것이라고 합니다. “나는 이 둘 사이에 끼어 있습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훨씬 더 좋으나(빌1:23).“ 바울에게 죽음이란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여기 “떠난다”는 용어는 군대용어입니다. 군인들이 야외에서 캠프를 칩니다. 훈련을 마치면 그 캠프를 철거합니다. 세상에 임시로 쳐두었던 캠프를 철수하는 것이 세상을 떠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하기 위해 캠프를 철수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좋은 것입니다. 훨씬 더 좋은 것입니다.

바울에게 산다는 것은 무엇일가요? 더 필요한 것이라고 합니다. “내가 육신으로 남아 있는 것이 여러분에게는 더 필요할 것입니다(빌1:24).”

죽는 것이 훨씬 더 좋은 것은 바울 자신 에게입니다. 더욱 필요한 것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입니다. 그 결과 바울은 어떤 것을 택하였을까요? 자신에게 훨씬 좋은 것을 택했을까요? 아니면 교회에게 교인들에게 더 필요한 편을 선택하였을까요? 교인들에게 더 필요한 것을 선택합니다.

우리는 살아도 주님을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님을 위하여 죽어야 합니다.

우리가 죽으면 우리에게 훨씬 더 좋습니다. 그러나 살아도 다른 사람들에게 우리는 더욱 필요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 3:16).
For God so loved the world that he gave his one and only Son, that whoever believes in him shall not perish but have eternal life. (John 3:16 N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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