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na 24

그리스도 때문에 모든 것을 잃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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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결혼을 했을까요? 일반적으로는 결혼을 하지 않았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학자들에 따르면 다른 견해도 있습니다. 보수적인 탁월한 학자 중에는 바울이 결혼을 했었다는 주장을 합니다. 그 주장에 의하면 그 당시 랍비들은 거의 예외 없이 결혼을 하였는데, 바울이 랍비 훈련을 받았기 때문에 그 역시 결혼을 하였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또한 고전 7:12-15에서 결혼 생활에 주는 충고를 보더라도 그가 결혼 생활의 내면을 잘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에게 믿지 않는 아내가 있는데 그 여자가 남편과 같이 살기를 원하면 이혼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믿지 않는 쪽에서 헤어지려고 하면 헤어지게 하십시오. 이런 경우에는 형제나 자매가 얽매일 것이 없습니다.”

설득력이 있는 주장입니다. 당시 유대교에서 바울과 같이 열성적인 바리새인이 이단자가 되었을 경우 개종을 하지 않은 배우자와 가족들에게 버림받는 것이 상례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다메섹에서 회심 후에 그 아내가 바울을 버렸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저는 바울이 결혼하였는가 아닌가를 밝히려는 것이 아닙니다. 했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틀렸다고 이단이 되는 것도 아니고, 맞다고 정통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바울이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든 것을 잃었고, 그것들을 오물로 여깁니다(빌3:8)”고 말하고 있는데 만약 바울이 결혼을 했었다면 그 모든 것 중에는 유대인으로서의 모든 특권과 그의 성취들뿐만 아니라 “자신의 가정”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려고 그 말을 하는 것입니다.

베드로의 아내에 대한 이야기는 성경에 나오는데 바울의 가족에 대한 이야기는 성경에 나오지 않습니다. 바울이 감옥에 갇혀 재판을 받을 때 가족들이 바울을 면회 한번이라도 왔을 것인데 아무 이야기가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리스도 때문에 가족도 잃었다는 말이 설득력이 있습니다. 저는 이 부분을 묵상하면서 가슴이 멍했습니다. 바울에게 유대인으로서의 특권들이 있지만 그 정도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버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열성으로 성취한 것도 그리스도를 위하여 잃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때문에 가정조차 잃었다는 것은 또 다른 문제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비우는 훈련인 것 같습니다. 예수님도 그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내게로 오는 사람은,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나, 아내나 자식이나, 형제나 자매뿐만 아니라,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도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눅14:26) 이 예수님의 말씀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아주 곤란해집니다. 예수님을 사랑하고 믿는 것을 방해하는 것이 있다면 그 무엇이든지 비우라는 뜻입니다. 사막의 수도사가 되려면 가장 먼저 훈련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가정을 잊는 것입니다. 잊는다고 잊어집니까? 가정에 대한 애착을 끊는다는 의미입니다. 그 훈련이 가장 먼저입니다. 심지어 어머니가 면회를 와도 만나지 못합니다. 아들의 얼굴을 멀리서라도 한 번만 보고 가겠다고 해도 볼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 때문에 무엇을 잃어 본 적이 있습니까? 아주 큰 것은 무엇입니까? 아주 작은 것은 무엇입니까?

바울이 그리스도 때문에 모든 것을 잃었다, 그렇게 해서 얻고 싶은 것이 있었습니다. “내가 바라는 것은 그리스도를 알고, 그분의 부활의 능력을 깨닫고, 그분의 고난에 동참하여 그분의 죽으심을 본받는 것입니다.” 바울이 바라는 것은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고 합니다. 여기 안다는 것은 단지 지식이 아닙니다. 체험적으로 아는 것입니다. 경험적으로 아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경험적으로 알면 그리스도를 사랑하게 됩니다. 체험적으로 아는 것은 그리스도를 하나님으로 알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하나님으로 알면 그분을 순종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하나님으로 알게 되면 그리스도의 부활이 믿어집니다.

둘째는 부활의 능력을 체험적으로 아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셨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이 믿음을 통해서 우리는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갑니다. 들어간다는 것은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연합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연합이 이루어지면 우리가 그리스도의 인격과 그 분이 하신 일에 동참한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의 죄에 대한 죽음은 우리의 죄에 대한 죽음이 되고, 그분의 부활은 우리의 부활이 되는 것입니다. 그

셋째는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한다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그리스도의 고난을 함께 나누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때문에 고난을 당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낯선 단어들입니다. 해보지 않아서 낯선 것입니다. 왜 우리는 날마다 죽어야 합니까? 왜 우리는 자기주장을 버리고 주님의 통치에 순종해야 합니까? 이것이 주님의 죽으심을 본받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함께 죽고, 그분의 죽음 안에서 예수님을 닮아가는 훈련입니다. 이것을 성화 또는 구원의 현재라고도 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 3:16).
For God so loved the world that he gave his one and only Son, that whoever believes in him shall not perish but have eternal life. (John 3:16 N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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