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na 24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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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은 이성과 반비례할 때가 많습니다. 이성적으로는 도저히 소망할 수 없는 환경임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희망을 놓지 않을 것이라고 외치는 것은 신앙입니다. 이성적으로는 도저히 기뻐할 수 없는 환경임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기뻐한다 라고 외치는 것이 신앙입니다. 빌립보서를 썼던 바울이나 그 편지를 받아든 빌립보교인들이나 모두 이성적으로 판단해 보면 기뻐할 근거가 도무지 없습니다. 바울은 로마 감옥에서 사형선고를 받을 수도 있는 그런 환경입니다. 빌립보교인들은 밖으로부터는 환란과 핍박이 있고, 내부로부터는 다툼과 분열이 있는 그런 환경입니다. 기뻐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닙니다. 이런 상황에서 바울은 기뻐하라는 단어를 16번이나 사용하면서 빌립보교인들에게 힘을 주고 있습니다.

모양과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우리 모두는 어려운 환경에 처합니다. 더구나 코로나 펜데믹 상황에서는 어려운 환경에 처해 있는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도저히 이성적으로는 생각하면 회복할 수 없는 그런 환경에 처해있는 분들 많으실 겁니다. 어려움이란 반드시 경제적인 위기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정신적으로, 심리적으로, 영적으로 위기일 때 여러분은 어떻게 행동하십니까? 이성적으로 생각하시고 행동합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앙이 발동합니까?

바울이 곤경에 빠진 빌립보교회에게 해결책을 한 가지 줍니다. 그것은 항상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기뻐할 수 없는 환경에서 항상 기뻐할 수 있을까요? “주 안에서”는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주님 안에서 항상 기뻐하십시오. 내가 다시 말하거니와, 기뻐하십시오.(빌4:4)” 기뻐할 수 없는 상황에서 항상 기뻐할 수 있는 것은 “주 안에서”의 신앙으로 가능합니다. 이성적으로는 기뻐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 안에서’ 신앙으로는 항상 기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 안에서의 신앙은 어떤 신앙일까요?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주님이십니다. 예수님을 주님이라고만 불러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야훼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시고 만유의 주관하시는 분이십니다. 유대인들은 그 야훼 하나님을 주님이라고 불렀습니다. 감히 야훼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 수 없어서 ‘아도나이(주님)’라고 부른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하나님 우편에 계시는 분으로 그분은 주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 죄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지금은 만물의 주권을 위임받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릅니다. 주님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핍박과 환란, 분열이 있다는 것을 잘 아십니다. 왜 그런 어려움을 겪는지도 잘 아십니다. 그런 어려움이 언제 끝날지도 잘 아십니다. 결국 모든 것이 주님의 선하신 뜻대로 되어 질 것이라는 것도 아십니다. 문제를 보는 것이 아니라 그 문제를 주관하시는 주님을 바라보는 것이 “주 안에서” 신앙입니다. 그 신앙으로 그리스도인들은 항상 기뻐할 수 있습니다.

항상 기뻐하라는 말씀은 그냥 빈말이 아닙니다. 힘든 상황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이 말씀은 격려차원에서 그냥 말한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친히 격은 후에 이 말씀을 전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지금은 로마 감옥에 있습니다만 빌립보교회가 있는 빌립보 감옥에도 있었습니다. 행16장 10절이하를 보면 빌립보에 도착하여 많은 사역을 감당합니다. 루디아를 변화시킵니다. 귀신을 좇아냅니다. 핍박이 찾아옵니다. 바울과 실라는 빌립보 감옥에 갇힙니다. 매질을 많이 당합니다. 발에 차꼬를 채웁니다. 꼼짝 못합니다. 바울은 좌절하지 않습니다. 그 순간 바울이 한 것은 무엇입니까? 사도행전 16:25.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면서 하나님께 찬미의 노래를 부르니, 죄수들이 듣고 있었다.” 기도하면서는 분사입니다. 주 동사는 찬미하였다는 동사입니다. 찬미하다는 헬아어로 “휨네오(찬양하다)”입니다. 찬양을 하면 힘이 나는 것입니다.

찬양하였다는 것은 기뻐하였다는 것입니다. 감옥에서 꼼짝도 못하는 상황에서 바울은 모든 환경을 주관하시는 주님을 믿었습니다. 모든 환경을 다 아시는 주님 안에서 찬양을 불렀습니다. 이것이 “주님 안에” 신앙입니다.

로마 감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감옥에 있지만 불평불만 없습니다. 복수심도 없습니다. 바울은 감옥 안에서도 복음의 진보를 이루었다고 말합니다. “어찌되었든지 복음이 전파되고 있는 것을 나는 기뻐하고 기뻐합니다(빌1:18)” 하고 주님을 찬양합니다. 이것이 “주 안에서” 신앙입니다.

우리도 가능합니다. 여러분의 지금 환경이 어떻습니까? 좋습니까? 그러면 더욱 기뻐하십시오. 안 좋습니까? 좌절하지 마십시오. 그런 환경을 다 아시고 언제 벗어나게 될지도 아시는 분이 주님이십니다. 예수님이십니다. 지금 여러분의 모든 억누르는 환경을 주님께 던져버리고 여러분은 주님 안에서 항상 기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 3:16).
For God so loved the world that he gave his one and only Son, that whoever believes in him shall not perish but have eternal life. (John 3:16 N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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