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모인 나의 한국 국적이 내 아이의 장래에 걸림돌이 된다면, 아이의 미래에 씌우지 않아도 되는 멍에를 씌우고 있다면, 어찌해야 될까? 미주 한인 부모들의 남모를 속앓이가 계속되고 있다.
현행 국적법상 출생 당시 부모 중 한 명이 한국인이면 자동으로 선천적 복수국적자가 된다. 이는 미주한인2세들이 미 정계나 공직진출시 이중국적의 피해를 낳고 있다. 여기에 2016년부터 부계주의에서 부모양계주의로 확대 적용되면서 혼혈인 2세까지 포함됐다.
이 문제의 발단은 지난 2005년 통과된 홍준표법이다. 이로 인해 원정출산자도 아니고 병역기피자도 아닌 약 20만 명으로 추산되는 미주한인2세와 혼혈2세들이 발목을 잡혔다.
이와 관련해 미국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를 가진 다문화 자녀 혼혈인인 크리스토퍼 샨 멀베이 주니어(Christopher Shawn Mulvey, Jr)가 미 정계나 공직진출시 불이익을 초래하는 한국의 부당한 선천적 복수국적법에 대한 5번째 헌법 소원을 지난 13일(한국시간) 헌법재판소에 접수했다.
멜베이군은 미국에서 태어났고, 성도 미국 성이고, 외형도 미국인으로 생겼고, 한국호적에도 없는 혼혈인이다. 원정출산자도 병역기피자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단지 태어날 때 어머니가 한국인이란 사실 때문에 만 18세가 되는 해 3월 31일까지 한국국적 이탈을 하지 않을 경우, 한국 병역을 마치지 않는 한 만 38세가 될 때까지 한국국적 이탈이 불가능하다.
멜베이군의 아버지는 미국인으로 한국 국적법에 대해 알지를 못했고, 또한 한국 정부도 통지를 해 주지 않았다. 멜베이군이 2017년 3월 말까지 국적이탈을 하기 위해서는 부모의 국적 상실 신청, 부모의 혼인 등록신청, 멜베이 출생신고 신청 (복수국적자 기록 낙인), 멜베이 국적이탈 신청등 복잡한 절차를 밟으며 많은 서류를 제출해야 한다. 멜베이의 미국인 아버지는 문화적, 언어적 장벽때문에 국적이탈을 아예 포기한 상태이다.
설령 한국 영사과를 방문하여 접수한다고 하더라도 6개월에서 1년 정도 소요되기에 이미 국적이탈 의무 마감일을 놓쳤다. 그는 만 38세까지 한국국적 이탈이 불가능해진 상태이다. 또한 국적이탈을 못한 멜베이군의 경우, 만 38세가 되기 전에 결혼하여 자녀를 가질 경우, 그 자녀 또한 선천적으로 복수국적자의 지위를 강제당할 수 밖에 없다. 이것은 복수국적 낙인의 대물림으로 이어진다.
전종준 변호사는 “청구인과 같은 혼혈인 이민 2세는 한국에서 살고자 하는 자가 아니고, 병역기피의 목적이 없는 선천적 복수국적자로서 국적 이탈의 자유를 심각하게 제한하여 그 피해가 지나치게 크기 때문에 또 다시 헌법소원을 제기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는 2015년 헌법재판소는 나의 4번째 헌법소원에 대해 5 대 4로 결정을 내리면서 그 판결문에 “공직진출을 막고 있다”는 나의 주장에 대해 공직은 “극히 우연적인 사정”이라고 판시했다. 그러나 미국에서의 공직은 극히 우연적인 사정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정치인, 연방, 주 정부 공무원, 군인, 사관학교, 경찰, 소방관, 정보기관, 국공립교사 등 신원조회를 요구하는 모든 직종을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멜베이군이 정계나 공직에 진출할 경우 만 38세까지 한국국적을 이탈할 수 없어서 신원조회 시 이중국적자로 낙인 찍혀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공직은 우연적인 사정으로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직업선택의 자유권을 침해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한편 후천적 복수국적자의 경우, 한국에서 태어나고 미국에서 영주권을 받고 미 시민권자가 되면 한국 국적이 자동 말소되며, 국적 상실신고만 하면 쉽게 처리된다. 반면에 선천적 복수국적자의 경우에는 미국에서 태어나서 미 시민권자가 되었는데도 후천적 복수국적자보다 더 과도한 절차를 요구하고 있기에 평등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시각이 많다.
미국을 방문했던 한국의 국회의장이나 국회의원들은 선천적 복수국적의 잘못된 점을 인정하며 제도개선을 약속했지만 아직까지 개정작업은 없었다.
전 변호사는 한인2세나 혼혈인 2세들이 이중국적자로 의도하지 않은 피해자가 되어 미 주류사회에서 미 정계나 공직에 진출하여 한국인의 위상을 높이지 못하게 되는 것은 결국 한국도 손해고, 미주동포도 손해라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