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na 24

4차 산업혁명과 기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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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2015년부터 4차 산업혁명이 시작되어서 초거대 데이터베이스, 클라우드 기술을 통한 무소부재의 데이터 접속, 사물 인터넷, 이젠 분야 별로는 인간 전문가의 지식을 능가하는 인공지능(AI) 등의 첨단기술이 자율자동차, 드론, 3-D printing, 유전공학, 나노공학 및 로봇공학 등과 융합되어 과거에는 예상도 못한 일들이 이뤄지고, 공상과학 속의 거의 모든 일들이 현실화되고 있다. 거기에 블록체인 기술을 통해 신뢰도 100%에 가까운 효율적 유통혁명까지 겹쳐서 그 영향이 유통계를 포함한 경제 전반에 대변혁을 가져오고 있다. 더불어 가상화폐에 대한 뜨거운 열기는 세계 곳곳에서 광란에 가까운 현상을 야기하여 각국 정부들마저 당황케 하고 있다. 그 동안 1차부터 3차에 걸쳐 비교적 서서히 이뤄졌던 과거의 산업혁명들과는 달리 4차 산업혁명은 그 충격과 파장이 매우 빠르고 크고 넓게(글로벌하게) 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세상의 빛이자 소금 역할을 해야 하는 기독교계의 교회, 기관, 목사, 리더 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1. 배워서 알아야 한다.

4차 산업혁명이 일어나게 된 배경과 관련 기술에 대한 기본지식을 갖추어야 한다. 20세기 대표적 신학자 중 한 명인 칼 바르트(Karl Barth)는 “한 손에는 성경을, 다른 한 손에는 신문을”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기독교인들이 성경에만 갇혀 있지 말고 자신이 섬기고 하나님 말씀으로 바꿔야 할 세상을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최근에 일고 있는 블록체인 및 가상화폐 기술에 대하여 그것은 더러운 일이라고 생각하여 알려고도 하지 않고, 한쪽으로 밀쳐놓는 “거룩한” 성도들 및 목사/선교사들이 많은데, 거기에 빠지지는 말되 그것이 무엇인지 배우고, 어떻게 선용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과 연구와 기도가 있어야 한다. 만일 자신에게 맡겨진 자녀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알아보지도 않고 부모는 그저 성경만 읽고, 기도만 하면 자녀가 저절로 알아서 하나님의 관점을 가진 성령충만한 사람으로 자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큰 오산이고, 직무유기이다. 요한복음 10장 3절(“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에 나오는 선한 목자는 자신이 섬겨야 할 양들의 이름을 일일이 알 만큼 그들의 삶을 잘 파악하고 있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알아야 틀린 점은 고쳐주고, 바른 점은 장려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시고 거룩하신 예수님이 왜 더러운 이 땅에 오셨겠는가? 더러워도 사랑하기 때문에 오신 것이다. 죄는 미워하시지만, 죄인은 사랑하시는 것이다. 그런데, 4차 산업혁명이 무엇인지조차 모르는 목사들이 수두룩하고, 알려줘도 알고 싶어하지도 않는 이들이 많으니, 큰 문제이다. 한 교회의 영성은 담임목사의 영성이 그 한계라고 하듯, 세상의 영성은 교회의 영성을 앞서 갈 수 없다. 그러므로, 세상의 소금이요 빛이 되어야 할 기독교계는 4차 산업혁명에 대한 공부를 하고 수시로 전문가들 및 교계 동료들과 모여서 업데이트 되어야 한다. 평신도들만큼도 모르는 목사/선교사를 누가 따르겠는가? 비유컨대 그곳 지리를 모르는 “운전기사/선장”의 “버스/배”에 누가 타겠는가? 복음전파를 위해서 4차 산업혁명과 관련기술들을 알고, 그 분야를 점령해야 한다. YWAM (Youth With A Mission)(일명 예수전도단)을 만든 로렌 커닝햄 목사는 대대로 목사 집안이지만, 그의 아들 데이빗을 목사로 만들지 않고 영화감독으로 할리웃으로 파송했다. 데이빗 커닝햄은 할리웃에서 중견 영화감독으로서 좋은 영화들을 만듦으로써 그 분야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이런 것이 하나님께서 창세기 1장 28절에 말씀하신 “땅을 정복하고 … 다스리라”는 명령에 순종하는 것이다.

2. 이 모든 것은 수단이지 목적이 아님을 잊지 말아야 한다.

아무리 멋있고, 아름답고, 편하고, 대단해 보이는 기술도 본질인 목적이 아니라 비본질인 수단일 뿐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신명기 8장 3절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사는 것이라 말한다. 이것은 사람이 비본질적인 의식주, 기술 따위로 인생의 참 가치와 만족을 느낄 수 없기 때문이고,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진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이다. 웨스트민스터 대요리 문답 1항에 나온 대로 사람의 첫째 되고 가장 높은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함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당신의 뜻인 영혼구원 (누가복음 15장 참조)을 우리가 최선을 다해서 실천 때 그런 영광을 받으신다. 우리를 이 땅에 파송하신 것은 주신 달란트와 기질을 선용해서 사랑의 삶을 살면서 가능하면 많은 영혼들을 구원하는 데에 있다. 그러므로, 4차 산업혁명의 놀라운 첨단기술들에 그저 놀라고 누릴 것이 아니라 그 기술들을 숙지하여 복음사역에 선용해야 한다. 새삼 다시 숙지하자 – 기술은 가치 중립적인 것이다. 불이 나쁜가? 물이 나쁜가? 전기가 나쁜가? 화폐가 나쁜가? 악인들이 가상화폐와 첨단기술들을 틀어쥐고 세상을 장악하게 방관만 할 것인가? 창세기 1장 28절과 마태복음 28장 19-20절 대로 세상을 정복하여 다스리고, 제자화하려면 모든 자원(resources)들 또한 크리스챤들이 장악해서 선용해야 한다.

3. 이런 기술과 현상이 관계를 망가뜨리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마태복음 22장 35-40절에서 율법사가 예수를 시험하여 수백 개의 계명 중에서 어느 것이 가장 큰 계명인가 물었을 때 예수는 3가지 관계를 말했다: 하나님과 나의 관계, (비록 암시적이지만) 나와 나의 관계, 그리고 나와 남들 간의 관계. 하나님께 사랑을 배워서 내가 누리고 익힌 다음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라고 하셨다. 그리고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을 담은 성경(구약) 전체를 요약한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자율자동차며, AI를 장착한 도우미 로봇이며 엄청난 첨단기술이 엄청난 편리함과 윤택함을 제공할 것이다. 그러나, 요즘 스맛폰이 사람들 간의 관계를 오히려 해치고, 사람들을 더 고립시키는 경향도 있듯, 이런 기술들이 사랑의 관계를 해치지 않도록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예를 들자면, 자율자동차 시대가 곧 열리면, 그 동안 라이드를 드리던 노부모님께 바쁘기 때문에 더 이상 꼭 가야 할 필요가 없어진 것처럼 보일 수도 있는 것이다. 노약한 어머님이 스맛폰의 단추 몇 번 누르면 무인자율차가 와서 안정하게 병원까지 모셔다 드리고 다시 모시고 댁으로 데려다 드릴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부모-자식 간에 서로 볼 시간이 없어진다면 … 도대체 우리는 무엇 때문에 바쁘게 일을 하고 첨단기술을 개발한 것인지 다시 고민해 봐야 할 것이다. 우리 인생의 목적은 행복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도 사실은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가 행복해지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이다. 행/불행은 다른 물질이나 의식주/기술이 아닌 관계에 달려있다. 그래서 요한일서 2장 15-16절에서 이렇게 기록한 것이다: ” 15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그러므로, 우리가 그것이 무엇이든 누구든 (마태복음 22장에 나오는 예수님 말씀대로) 하나님, 나, 남들과 사랑하는 것을 방해하지 않도록, 늘 사랑을 우리 삶의 제0순위에 놓자.

김정우 (M.Div. & Ph.D. in AI)

미국 남가주 소재 발렌시아 새누리교회 담임목사

세상을 마주하는 포럼(세마포) 임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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