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으로 대면 모임은 자주 못해
-기도제목과 말씀, 교제 속 힐링
-사모가 될 줄은 몰랐다
메릴랜드사모회(회장 최선자)는 18일 실버스프링 소재 메릴랜드한인장로교회(최영 목사)에서 4월 월례회를 가졌다.
최선자 사모는 팬데믹 기간 동안 가장 큰 영향을 받은 곳이 교회가 아닌가 한다. 식당도 마켓도 가는데 주일에 교회 오는 것을 망설이는 성도들을 볼 때 우리 모두가 같은 마음으로 기도했을 것이다. 하루속히 팬데믹이 종식되어 함께 예배와 친교를 나눌 수 있게 되길 바란다고 했다.
이날 회원들은 팬데믹으로 자주 자리를 하지 못해서 더욱 반갑고 정겨운 시간이었다. 최 사모가 텃밭에서 따온 신선한 채소와 진한 곰국으로 오찬을 나누며 교제를 나눴다.
월례회를 함께 한 기자는 사모들은 본인이 사모가 되길 원했을까 궁금했다. 평소 사모란 목사의 그림자처럼, 있는 듯 없는 듯 그러나 무언가 티를 내지 않고 늘 무언가 해야만 하는 의무는 있고 권리는 없는 지위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취재를 하며 느낀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이다.
사모가 되고 싶으셨던 분이 계셨나요? 이날 참석한 12명의 사모 중 거의 아니다. 사모가 될 줄은 생각도 못했다. 아니 되고 싶지 않다고 말을 하곤 했다고 했다.
그러나 지금 사모가 되고 나니 이같은 축복이 없다고 했다.
사모가 되어서 좋은 점은 무엇인가요?
교회 간다고 싫어하거나 못가게 하는 사람이 없다. 늘 기도의 자리를 지킬 수 있어서 좋다. 새벽기도 쉽지 않았으나 억지로라도 순종하니 복이 되었다. 항상 하나님께 포커스 할 수 있는 것이 좋다. 부족한 나를 하나님이 이런 자리로 왜 부르셨을까 하며 감사기도가 절로 나온다. 주일날 신앙공동체와 함께 섬길 수 있는 것이 좋다.
또한 사모라는 자리에서 말을 아끼니 화평케 하는 자가 되었다. 설령 내가 맞는 말이라도 그 말을 아끼고 인내하며 기다리니 주변이 화평케됐다. 원래 나도 그런 사람은 아닌데 실패도 경험하고 그들의 모습에서 나를 발견하기도 하면서 일찍 철이 들었다. 그러나 이는 억지로 참는 것과는 다른 은혜이다.
사모의 자리로 부르시기 전 하나님은 나의 모습을 돌아보게 했다.
한 사모는 자신이 믿음이 적었던 시절이고, 남편은 목회자가 아닐 때 교회를 잘 섬기고 예수님을 잘 믿는 남편이 좋아서 결혼했는데, 남편이 십일조, 건축헌금을 많이하자 불만이 쌓이고 그 때마다 교회 안간다고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부흥회에서 통변하시는 분이 오셔셔 나의 방언기도를 들으시더니 “내 남편에게 잘못한 것을 용서해 달라”고 기도한다고 했다. 그때까지 나는 뭘 잘못했는지 몰랐다. 그날 비로서 내가 그동안 성령님을 탄식하게 했음을 깨닫고 회개했다.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셔서 작은 죄도 짓지 못하도록 통변자를 통해 알게 했다.
한 사모는 사모 안하겠다고 미국 유학 왔는데, 남편이 교회를 창립한다고 해서 눈물이 났다. 나는 사모감이 아니라고 우겼다. 그러던 어느 날 찬양하면서 성령받고 기도가 나오는데 자신을 위해 매일 아침 무릎꿇고 기도하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보이며 눈물과 함께 깊은 성령체험을 하며 순종하게 됐다.
또 다른 사모는 자신보다 어머니가 너는 사모 안시킬려고 전도사 혼인자리가 나와도 얘기도 안했는데 결혼 한 남편이 뒤늦게 신학교 가서 사모가 됐다. 그때 어머니는 너는 사모로 부르셨나보다고 하셨다.
사모라는 자리가 외롭고 친구를 사귀기 힘든 자리인데, 이렇게 서로 기도제목도 나누고 격려하며 힐링의 시간을 갖는 것이 좋아 보였다. 특히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내 이야기이니 나누겠다면 솔직하게 이야기를 꺼내 놓은 사모를 보니 사모들간의 신뢰도 커보였다.
주일에 교회에 가면 우리 한 번 사모님들에게 따뜻한 인사말을 나누는 한 주가 되어 보면 어떨까?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 3:16).
For God so loved the world that he gave his one and only Son, that whoever believes in him shall not perish but have eternal life. (John 3:16 N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