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세기 이집수 수도사들 중에도 몇 종류의 수도사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공주수도사입니다. 엄격하게 공동체 생활을 하는 수도원의 수도사입니다. 그리고 은수사 또는 독수도사라고도 합니다. 이분들은 다 진짜 수도사입니다. 또 다른 수도사가 있었는데 사이비 수도사입니다. 사라바이트라고 부릅니다. 전자는 마음이 가난하기를 동경하며 가난을 참고 견디지만, 후자는 온갖 것에 풍부함을 추구합니다. 전자는 날마다 수고의 대가를 거부하고, 처음 수도생활을 시작할 때의 열심을 새롭게 합니다. 후자는 날마다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할 때 교만에 빠집니다. 전자는 인내하며 처음 수도생활을 할 때의 상태를 엄격하게 유지하지만, 후자는 그런 것들을 다 내 던져 버립니다. 전자는 엄격하게 훈련하지만 후자는 수도원 규칙에 따라 훈련하는 일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자기 뜻대로 행동하는 사람들입니다. 가짜 수도사는 됨됨이에는 관심이 없고, 행동에만 관심이 있는 사람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인격의 연마에는 관심이 없고, 어떻게 하면 사역을 더욱 크게 벌릴까,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는 화려한 사역을 이룰 것인가에 관심이 더 가있는 사람들, 또는 그런 교회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를 보실 때에 인격을 먼저 봅니다. 우리가 이룬 업적을 먼저 보지 않습니다. 모세도 그랬습니다. 자기 동족을 위해서 이집트 사람을 살해하는 열정이라면 얼마나 많은 사역을 해 낼 사람입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그에게 바로 일을 맡기지 않았습니다. 그에게 먼저 맡겨진 일은 광야에서의 생활이었습니다. 인생의 1/3을 광야에서 보냈습니다. good start 보다 중요한 것은 good finish입니다. good finish를 하는 사람들을 보면 인격훈련이 더욱 길고, 오히려 사역은 짧습니다. 우리는 보통 짧게 공부하고, 인격훈련도 없이 바로 사역현장에 투입되어 평생 일합니다. 그래서 사역은 화려하게 일구어 놓았는데 마지막을 잘 끝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모세는 광야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한 인격이 연마되었습니다. 성경의 모든 위대한 사역자들은 다 광야의 생활을 거쳐 인격이 연마된 사람들입니다. 사역만 크게 일구어냈다고 하나님의 칭찬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는 인격입니다. 됨됨이입니다. 바울도 이것을 알았습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위해 언제나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을 위해 한 바울의 기도 내용이 무엇입니까? 두 가지를 기도했습니다. 하나는 인격이고요, 둘은 행위입니다. 더욱 정확하게는 하나는 예수님의 인격을 닮은 사람이 되는 것이고요, 둘은 하나님의 능력 안에서 믿음의 사역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살후1:11). 이 둘이 조화를 이루어야 그것은, 우리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우리 주 예수의 이름이 여러분 가운데서 영광을 받고, 여러분도 그리스도 안에서 영광을 받는 것이 됩니다(살후1:12). 예수님이 우리 안에서 영광을 받고 우리도 예수님 안에서 영광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됨됨이는 겉으로 잘 안 보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사역은 눈에 잘 보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보이는 사역을 더욱 중요시 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보이는 사역을 통해 사람의 됨됨이를 평가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눈에는 우리의 됨됨이가 먼저 보입니다. 만약 우리의 사역이 자기중심의 사역이라면 하나님의 눈에는 안 보입니다. 여러분도 주님의 부르심에 합당한 사람들이 먼저 되셔야 합니다. 먼저 됨됨이가 갖추어져야 합니다. 모세처럼, 바울처럼 광야의 훈련을 통해서 하나님은 됨됨이를 훈련시키십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 3:16).
For God so loved the world that he gave his one and only Son, that whoever believes in him shall not perish but have eternal life. (John 3:16 N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