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na 24

작은 순교자(little marty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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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신앙을 버리기 보다는 죽음을 선택하는 행위를 순교라고 말하며, 그런 사람들을 순교자라고 말합니다. 순교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신앙을 버리는 대신에 육체적 죽음을 선택하는 것을 적색 순교라고 합니다. 그리고 신앙을 저 버리는 대신에 자기 자신의 죄성과 자신의 생각을 버리는 것을 백색 순교라고 합니다. 여기에 한 가지 순교를 더합니다. 의도적으로 자신의 육체적 죽음과 자신의 죄성을 버릴 의도도 없으면서 예수님 때문에 피를 흘리는 어린아이들어린 순교, 어린 순교자들, 또는 작은 순교, 작은 순교자들이라고 부릅니다. 이 용어는 제가 처음 쓸 것입니다. 마태복음 2장 16-18절이 바로 어린 순교자들에 대한 기록입니다. 이 기록은 마태복음서에만 나오는 장면입니다. 어떻게 보면 그 장면은 역사적인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구체적으로 기록하지 않아도 되는 역사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피상적으로 본다면 이 사건이 성경에 나온다한들 신앙에 무슨 도움이 되는가하는 의구심을 들게 만듭니다.

헤롯왕이 베들레헴과 그 가까운 온 지역에 사는 두 살 이하짜리 사내아이들을 모조리 죽였다는 성경을 읽으면서 무슨 신앙에 도움이 되었습니까? 두 살 이하이면 아무 것도 의도할 수 있는 나이도 아니고, 예수님을 믿는 나이도 아닙니다. 그들이 아무 잘못도 없이 죽어가는 사건에서 무슨 신앙의 유익을 얻는다는 것입니까? 오히려 그 사건을 읽을 때마다 헤롯왕이라는 미친놈에 대한 분노가 일어나고 그래서 마음이 불편했고, 그 부모들을 생각하면 아이가 개죽음 당해 불쌍한 생각이 들었고, 그리고 하나님은 그때 무엇을 하셨을까? 왜 그 폭군의 악행을 막지 못하셨을까?를 생각하면서 오히려 우리가 가지고 있던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허무는 기회가 될 수도 있습니다.

마태가 그 사건을 기록하면서 예레미아서 31:15 “15. “나 주가 이렇게 말한다. 라마에서 슬픈 소리가 들린다. 비통하게 울부짖는 소리가 들린다. 라헬이 자식을 잃고 울고 있다. 자식들이 없어졌으니, 위로를 받기조차 거절하는구나.”라는 예언의 말씀을 마태2:18절에 그대로 인용한 마음을 알기 전까지는 그랬습니다. 마태가 2살 이하의 사내아이들의 피비린내 나는 역사를 하나님의 관점에서 해석한 것을 알기 전까지는 그랬습니다. 마태의 그 마음을 안후에는 그 아린아이들의 개죽음 같은 죽음을 “어린 순교자들” 또는 “작은 순교자들”이라고 이름 붙여도 손색이 없을 만큼 내 마음은 견고해졌습니다.

마태의 마음을 생각해 보십시오. 마태의 마음도 느껴보려고 노력해 보십시오.  마태도 처음에는 이 개죽음 같은 사건을 헤롯에게만 포커스를 맞추어서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그러나 성령님이 계시하고 조명해 주셨습니다. 예레미아 31잘 15-16절의 말씀이 그 사건을 이미 예언하였다는 사실을 성령으로 깨닫게 됩니다. 마태는 깨달았습니다. 그 사건은 헤롯의 사건이 아니라, 예수님 때문에 아무 것도 모르는 아이들이 죽음을 당한 사건이니까 이것도 순교에 해당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때문에 죽는 죽음은 곧 생명에 이르는 길이라는 것을 그는 알았습니다. 그들 때문에 아기 예수님은 살아서 그 후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영생을 주었습니까? 그들의 죽음은 헛된 죽음이 아닌 것입니다. 그래서 아주 분명하게 성령의 조명을 받아서 그들의 어린 죽음과 구약의 예언의 말씀을 기록함으로 영적인 의미를 부여하였던 것입니다. 마태의 이런 작업이 없었다면 그들의 죽음은 헤롯의 악행에 의하여 맞이하는 개죽음에 속하였을 것입니다.

작은 순교는 예레미아서 31장 15절의 성취라는 것입니다. 마태 2:18절과 렘31:15절은 거의 유사합니다. 먼저 렘31:15절의 말씀을 살펴보고 왜 이 말씀이 새 생명의 탄생과 관련이 있는지 보겠습니다. 베들레헴과 인근 도시에서 2살 이하의 남자 아이들이 다 죽었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슬픔을 당했을까요? 아무 것도 모르는 나이에 그냥 개죽음을 당했으니까요. 말 한마디 못해보고 죽어갔습니다. 하나님을 원망할 수 있는 사건입니다. 그러나 마태는 여기에 중요한 영적 의미를 부여해 줍니다. 예레미아 선지자가 이미 예언했다는 것입니다. 예언자가 미리 예언했다면 중요한 영적 의미를 가지는 사건이 되는 것입니다. 18절을 보면 라마와 라헬이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라마는 지역이름이고 라헬은 사람이름입니다. 야곱에게는 두 부인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레아이고, 다른 하나는 라헬입니다. 라헬은 야곱이 총애했던 부인입니다. 그런데 레아는 아이를 잘 낳고, 라헬은 아이를 잘 낳지 못합니다. 12지파는 거의 레아로부터 나온 자식들입니다. 라헬은 요셉과 베냐민 둘 밖에 낳지 못합니다. 라헬은 얼마나 자식을 달라고 울었는지 모릅니다. 라헬은 베냐민을 낳다가 죽습니다. 라헬의 무덤이 바로 라마에 있었습니다. 자식 복에 있어서는 라헬은 박복합니다. 이 사실은 그 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설처럼 내려져 오는 이야기가 됩니다. 구약에서는 라헬을 mater dolorosa(고난의 어머니)라고 부릅니다. 라헬은 자식을 잃고 울었다. 자식들이 없었다. 라헬은 위로받지 못했다. 라헬이 라마에서 울었다는 것은 자식을 잃고 우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상징합니다. 이 자식을 잃고 우는 어머니의 이야기는 실제로는 바벨론 포로로 잡혀가는 아이들을 두고 예언한 것입니다. 바벨론으로 젊은이들이 끌려가는데(라헬의 후손들) 마치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버린 것과 같이 여겨졌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라마라는 장소는 라헬의 무덤이 있는 곳입니다. 이 장소는 바벨론으로 끌려가는 길목에 놓여있는 장소입니다. 마치 이스라엘 젊은이들이 이방 땅인 낯선 바벨론으로 끌려가면서 라마에 있는 라헬의 무덤을 밟고 지나가는데 이 망명자들의 운명을 비탄하게 여기면서 눈물 짓는 라헬을 그림으로 그렸습니다.

여기까지 이해가 되십니까? 그런데 더욱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마태가 렘31:15절을 인용하는데 바로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렘31:16절입니다. ”16. 나 주가 이렇게 말한다. 이제는 울음소리도 그치고, 네 눈에서 눈물도 거두어라. 네가 수고한 보람이 있어서, 네 아들딸들이 적국에서 돌아온다. 나 주의 말이다.“ 라헬은 베냐민을 낳다가 죽었습니다. 헛고생한 것 같지 않습니까? 헛된 고통을 겪은 것 같지 않습니까? 주님은 그 고통들이 헛된 고통이 아니라고 말씀합니다. 다 목적이 있는 고통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 젊은이들이 바벨론으로 끌려가는 것도 다 목적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주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수고한 보람이 있어서, 네 아들딸들이 적국에서 돌아온다. 나 주의 말이다.“ 네 아들딸들이 다시 돌아오는 보상을 받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바벨론으로 가는 슬픔 안에서 새로운 생명이 훈련되고 다시 소생한 이스라엘로 새롭게 탄생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실제로 그렇게 되었습니다.

헤롯의 악행으로 자식을 잃은 어머니들의 슬픔은 말할 수 없이 크지만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섭리 하에 큰 보상으로 돌아온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희생으로 아기 예수님은 무사했고, 그 새 생명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영생을 얻게 되었습니까? 어린 순교자들의 순교는 결코 헛된 죽음이 아닙니다. 반드시 보상으로 새 생명을 돌려받을 것입니다. 나는 이것을 알고 2살 이하 사내아이들이 죽은 사건에 대한 오해를 풀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 3:16).
For God so loved the world that he gave his one and only Son, that whoever believes in him shall not perish but have eternal life. (John 3:16 N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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