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na 24

감정의 희생자냐 증인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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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저는 1년에 두 번씩 수도원에 들어가서 침묵 훈련을 합니다만 예전에는 기도원을 다녔습니다. 수도원은 좀 조용하고, 기도원은 좀 시끄럽습니다. 그 이유는 수도원은 하나님 말씀을 고요하게 듣는 곳이고, 기도원은 나의 갈망을 주님께 부르짖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둘 다 필요합니다. 전자를 침묵 기도, 후자를 구송기도라고 말합니다. 물론 통성기도는 한국에서 생긴 단어입니다. 중간쯤을 묵상기도라고 부르면 되겠습니다. 하여튼 저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든 기도를 합니다. 제 경우는 기도원에서 통성기도 할 때는 기도가 시끄러워서 그런지 은혜도 시끄럽게 받습니다. 은혜 받으면 더욱 시끄러워집니다. “주여! 주여! 감사합니다.” 침묵기도를 할 때는 은혜도 고요하게 받습니다. 은혜 받고 그냥 눈물을 흘립니다. 어떤 기도를 하던 은혜를 받습니다. 더구나 집과 동 떨어져서 며칠 동안 기도에 전념하면 은혜를 받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은혜를 충만히 받을 때는 온 세상이 다 내 세상 같습니다. 이제는 모든 장애물이 내 앞에서 물러가고 내 인생에 아스팔트길이 금방이라도 열릴 것 같습니다. 마치고 충만해서 산에서 내려와 집에 도착합니다. 그런데 내 생각과는 다르게 삶이 생각처럼 쉽게 풀리지 않습니다. 집에 도착하면 꼭 화날 일들이 바로 나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참 신기 합니다. 꼭 은혜 받고 내려오면 나를 기다렸다는 듯이 화나고 짜증날 일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면 속으로 짜증한 번 내고, 그래도 안 되면 화도 한 번 냅니다. 그러면 산에서 받은 은혜를 그대로 쏟아버리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속으로 혼란스럽습니다. 속으로 생각합니다. “신기하네, 은혜를 그렇게 많이 받고 왔는데 한 순간에 다 쏟아버리네. 나는 안 돼, 나는 안 돼, 하고” 자책합니다. 여러분도 공감하시죠?

다행히 예수님도 이런 유사한 일을 겪습니다. 예수님이 40일 이상의 금식도 마치고, 세 번의 시험도 이기고 난 후 마귀는 떠납니다. 그리고 천사들이 와서 예수님께 시중을 들었습니다. 천사들이 예수님께 옵니다. 그리고 예수님에게 수종을 듭니다. 천사 하나가 아닙니다. 복수입니다. 이 정도면 예수님은 최고의 상태 아닙니까? 최고의 축복의 상태입니다. 이제 예수님은 금식을 마치고 세상 속으로 들어가야 할 때입니다. 예수님이 광야에서 세상으로 내려왔습니다. 예수님을 기다리고 있는 첫 째 사건이 무엇입니까? 요한이 감옥에 갇혔다는 소식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소식을 듣고도 마음이 요동하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너무나 냉정하다 할 정도의 반응을 보이십니다. 예수님이 그 소식을 듣고 헤롯을 향하여 분노를 낸 것도 아닙니다. 정의를 위해서 의로운 분노를 낸 것도 아닙니다. 광야에서 천사들이 시중들 때나 그 소식을 접할 때나 여전 하십니다. “예수께서, 요한이 잡혔다고 하는 말을 듣고, 갈릴리로 물러가셨다.”

예수님과 우리와의 차이점이 무엇일까요? 예수님과 우리들도 은혜 받는 것은 마찬가지인데, 예수님은 세상에 내려와서도 똑 같으시고, 우리는 세상에 내려오자마자 은혜를 쏟아버립니다.

그 차이는 예수님은 고통스런 감정의 희생자가 아니고 증인이 됩니다.

심지어 예수님은 이 보다 더한 순간에도 냉정하십니다. “요한의 제자들이 와서, 그 시체를 거두어다가 장사지내고 나서, 예수께로 가서 알려드렸다. 예수께서 그 말을 들으시고, 거기에서 배를 타고, 따로 외딴 곳으로 물러가셨다…”(마14:12-14) 예수님은 너무하신 것 같다고 생각들지 않으십니까? 저렇게 냉정하게 무반응으로 하실 수 있습니까? 감옥에 갇혔다는 소식을 들으셨을 때는 그렇다고 하지만 목 벰을 당하였다는 소식을 받으셨는데 그럴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목 벰을 당한 이유를 여러분도 아시지요? 춤추는 여자가 요한의 목을 달라고 하였다고 목 벰을 당한 것입니다. 분노가 일어나지 않습니까? 분노를 하더라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상황입니다. 예수님의 이런 반응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요? 예수님은 고통스러운 감정에 희생자가 되지 않으시고 증인이 되십니다. 그렇다고 예수님의 요한에 대한 평가는 달라지지 않습니다. “아니면, 무엇을 보러 나갔더냐? 예언자를 보러 나갔더냐? 그렇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는 예언자보다 더 위대한 인물이다. 이 사람에 대하여 성경에 기록하기를 보아라, 내가 내 심부름꾼을 너보다 먼저 보낸다. 그가 네 앞에서 네 길을 닦을 것이다 하였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여자가 낳은 사람 가운데서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없었다…”(마11:9-11) 예수님의 요한에 대한 평가는 확고합니다. 요한이 당한 일이 예수님에게 고통스러운 감정임에는 분명하나 예수님은 그 고통스런 감정에 희생자가 되지 아니라고 증인이 됩니다. 증인이 된다는 것은 “아 고통스러운 일이 있구나!” 하고 인정하지만 그것에 희생자는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어떤 신실한 부인이 암이 전이 되어 방사선 치료를 받고 머리카락이 다 빠졌습니다. 어느 주일에 교회당에 나왔는데 한 지인이 “얼마나 아프세요.”라고 하면서 슬퍼하였습니다. 그 부인이 대답하였습니다. “아, 저는 아픈 게 아니라 그냥 암이 생긴 거예요.” 이것이 고통스런 감정의 희생자가 아니라 그냥 증인이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 3:16).
For God so loved the world that he gave his one and only Son, that whoever believes in him shall not perish but have eternal life. (John 3:16 N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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