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na 24

영적인 삶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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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믿는 우리가 세상의 소금이라고 하셨습니다. 소금은 기능은 무엇일까요? 소금은 보이지 않게 녹아서 부패를 늦추고, 원 상태를 변형시키는 것을 늦추고, 방부제로서의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소금의 역할을 잘 해내면 우리의 도덕적인 수준을 높이기도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영적인 삶의 고양을 이루어 냅니다. 영적인 부패를 막는 것입니다. 영적인 부패를 막는다는 것은 영적인 삶을 살도록 한다는 의미입니다. 영적인 삶이란 무슨 의미입니까? 매일 교회당에 가서 열심히 봉사하는 삶일까요? 게으른 삶과는 반대되는 그런 삶일까요? 영적인 삶이란 그런 것이 아닙니다. 반대로 산속으로 들어가서 수도생활에 전념하는 삶일까요? 그런 것도 아닙니다. 물론 수도사로 소명을 받은 분들은 수도생활이 그들의 삶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사람이 수도원에 들어가서 산다고 영적인 삶을 산다고 할 수 없습니다. 영적인 삶이란 한 마디로 기도하는 삶을 의미합니다. 기도는 어떤 종교적 행동이 아닙니다. 기도는 영혼의 상태입니다. 기도란 우리의 눈을 살아계신 하나님께로 들어 올리는 것이고, 살아계신 하나님이 우리에게 자신을 드러내 보이시는 상징들을 향하여 우리의 눈을 들어 올리는데서 시작합니다. 이 말은 우리가 고요히 침묵으로 하나님께 기도하기 위해서 앉아있는 것만이 아니라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피조물들을 통해서, 일상생활에서 하나님의 흔적을 보기 위해 우리 영혼의 눈을 들어 올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블린 언더힐은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나는, 우리가 우리의 일상생활 안에 함께 계시며 우리의 일에 의미를 부여해 주시는 하나님의 실재를 경건하게 기억하는 데에 훨씬 더 많이 노력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영적인 자아의 치명적인 적들인 좁은 마음과 자신에 대한 집착, 그리고 불안을 물리치는 데는 이 보다 더 나은 방법은 없다.” 현대 그리스도인들이 놓치는 중요한 실패는 일상생활 속에 함께 계시는 하나님을 놓치는 것입니다. 이것은 영적인 부패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너무 좁은 시야를 가지고 있어서, 이런 영적 부패를 돌파하지 못합니다. 좁은 마음과 자신에 대한 집착, 그리고 불안이라는 영적 부패 때문입니다. 이런 부패에서 벗어나는 것이 영적인 삶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너무 좁아서 자신의 처한 상황에만 초점을 맞춥니다. 자기중심적 신앙으로 좁아집니다. 더 크신 하나님을 보는 눈을 갖지 못합니다. 영적 쪼그라듬입니다. 이것도 영적 부패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나를 도와주지 않는다고 좌절하고 불평합니다. 어떤 분이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우리의 온 생애는 골짜기의 형편없는 작은 찻집에 갇혀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매일 눈을 들어 만년설을 바라볼 수 있다면 이 직업과 다른 모든 직업들은 고귀한 것이 될 수 있다.” 영적인 삶을 산다는 것은 이런 영적 부패에서 나를 건져내는 삶입니다.

어떤 분이 환상을 보았습니다. 큰 산이 곡식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참새가 한 마리 와서 낟알 하나를 물고 날라 갔습니다. 그 참새는 곡식으로 이루어진 그 큰 산을 잘 압니다. 그래서 참새는 무엇을 먹을까 걱정하지 않습니다. 우리도 풍요이신 하나님의 그 곡식 산을 바라볼 수 있을까요? 하나님에게는 모든 것이 풍부하신 분이십니다. 우리도 부족 가운데서 그 하나님의 곡물 산을 바라볼 수 있다면 지금 마음이 풍요하지 않을까요? 이것이 영적인 삶입니다.

하루는 성찰일기를 쓰는데 오늘은 무엇을 감사해야 할까를 생각했습니다.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습니다. 내가 오늘은 무엇을 했지? 손주 하나를 학교 보내고 또 다른 하나를 어린이 집 보내고, 출근하고, 퇴근하고, 손자 하나를 학교에서 데려오고, 학원에 데려다 주고, 다른 손자를 어린이 집에서 데려오고, 또 손자를 학원에서 데려오고, 걷고, 식사하고, 독서하고, 그것이 내가 한 전부였습니다. 그런 진부한 삶에서 내가 감사를 드려야하는 것이 무엇일가? 아무 것도 없는 것 같았습니다. 특별히 감사 제목이 없었습니다. 한참 묵상한 다음에 나는 깨달았습니다. 그 진부한 삶 어느 곳에도 주님이 계시지 않은 곳이 없었다는 것을. 나의 일터에 주님이 현존하셨습니다. 일 가운데 주님이 계셨습니다. 손주들을 데리고 오고, 학원에 데려다 주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선물로 보내 주신 귀한 천사들을 돌보는 일이었습니다. 감사하지 않은 것이 없었습니다.

평범한 곳에서 비범함을 보는 것 그것이 영적인 삶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 3:16).
For God so loved the world that he gave his one and only Son, that whoever believes in him shall not perish but have eternal life. (John 3:16 N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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