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보복하는 것에 대해서 가르침을 줍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악한 사람에게 맞서지 말아라. 누가 네 오른쪽 뺨을 치거든, 왼쪽 뺨마저 돌려 대어라. 너를 걸어 고소하여 네 속옷을 가지려는 사람에게는, 겉옷까지도 내주어라. 누가 너더러 억지로 오 리를 가자고 하거든, 십 리를 같이 가주어라.”(마5:39-41)
보복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른쪽 뺨을 치면 왼 쪽도 돌려 대라는 것입니다. 속옷을 송사하면 겉옷도 내주라고 하십니다. 억지로 오 리를 가자고 하거든 십 리를 가주라는 것입니다. 랍비들에 의하면, 오른쪽 뺨 한 대를 맞으면, 공격한 사람의 오른쪽 뺨 한 대를 때리면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전혀 다른 가르침을 주십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의 이 가르침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전혀 이해가 되지 않으시죠? 도저히 지킬 수 없는 것을 요구하시는 거죠? 그래서 사람들은 이것은 예수님이나 지킬 수 있다고 간단히 말합니다. 예수님 말대로 한다면 사람들에게 무책임한 것을 행해도 된다고 허락하는 것이고, 그들의 행동에 책임을 묻지 말라고 가르치는 것 같지 않습니까?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행동한다면 그럴 때 사용하는 말이 있죠? 쓸개 빠진 놈이라고 하죠. 담(膽)이라고도 하는 쓸개는 한의학에서 대담한 용기를 내는 장부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담이 크다는 것은 용기가 있다는 뜻이고, 쓸개가 빠졌다는 것은 용기가 없이 비겁하고 줏대가 없음을 뜻하는 말입니다. 하는 짓이 줏대가 없고 사리에 맞지 않을 때 사용하는 욕입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인들을 모두 쓸개 빠진 놈들 만들려고 작정하셨을까요? 그러셨다면 나는 그리스도인이 되기 싫습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시죠? 예수님이 말씀하신 진정한 의도를 파악하지 못하면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은 여러분이 쓸개 빠진 놈이 되기를 원하시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이 여러분에게 원하시는 것은 보복보다 더욱 강한 힘을 사용하기를 원하십니다. 그 보복보다 더욱 강한 힘이 무엇일까요? 바로 우리보다 위에 있는 어떤 사람으로부터 주도권을 빼앗아 오고, 선택의 권한을 되찾아 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잘못 이해하면 자기모독, 수동성, 억압에 대한 수락, 인간의 존엄성을 더욱 침해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핍박하는 남편을 둔 그리스도인 아내가 있다고 합시다. 아내에게 이렇게 조언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남편을 위해서 무조건 기도하고, 배우자에게 사랑을 보여주고, 그가 필요한 모든 것을 제공해 주고, 잔소리도 하지 마십시오.” 이런 것을 무엇이라고 합니까? doormat(흙털개)라고 합니다. 아내는 흙털개가 아닙니다.
예수님의 의도는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사랑과 관대함에 뿌리를 내려, 그들이 당하는 무시와 핍박에 대해서 반응할 때 “적대적인 원한”으로 대응하지 말고, “하나님의 선하심”으로 대응하라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이것은 피해나 상처를 무시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는 것을 의미합니다. 보복이 아니라 제3의 힘입니다.
월터 윙크라는 신학자는 오늘 본문을 통찰력 있게 분석하였습니다. “다른 뺨을 돌려대라”, “겉옷도 주어라”, “십리를 동행하라”는 제자들에게 수동적이거나 또는 조용히 있어 자신들을 억압하는 것에 겸손히 협력하라고 말하기보다는 오히려 불의와 억압을 직면할 때에는 창조적으로 그리고 용감하게 비폭력적으로 저항하라고 요구하는 것이라고 분석하였습니다. 오른 뺨에 주목하십시오. 오른 쪽 뺨을 때릴 때는 때리는 사람은 필연적으로 상대방의 오른 쪽 뺨을 자기의 오른 쪽 손등으로 때려야 합니다. 왜냐면 왼손은 “부정한” 일에만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손등으로 때리는 것은 심각한 모욕이었으며, 열등한 사람들을 경멸시키는 일상적인 방법이었습니다. 그래서 왼쪽 뺨을 돌려대는 것은 당신이 모욕하는 것을 거부한다는 뜻입니다. 왼쪽 뺨을 때리려면 오른손 바닥을 사용해야 합니다. 이것은 맞는 사람이 때리는 사람과 동등한 가치를 지닌다는 상징이라고 말합니다. 소송에서 요구받은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주라는 말씀은 어떤가요. 예수님 시대에 채권자가 채무자의 겉옷을 담보로 잡을 때는 해가 지기 전 까지 돌려주어야 합니다. 밤에 그 옷을 덮고 자기 때문입니다. 만약 해가 진 후에도 채권자가 가지고 있다는 것은 채무자가 벌거벗고 있었다는 의미입니다. 당시 벌거벗은 사람보다 벌거벗게 한 사람이 더 큰 수치로 간주되었습니다. 오리를 가자고 하는 자에게 십리를 가라 말씀에 대해서는 로마법에 의하면 군인들은 민간인들로 하여금 1 마일까지는 도움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이상은 군인들에게 엄한 징계가 주어졌습니다. 그러므로 10 리까지 가주겠다고 하는 것은 군인들에게 큰 불편을 줄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서 우리들의 인간성을 회복하는 실질적인 방법을 주셨습니다. 보복보다 더욱 강한 힘은 바로 우리보다 위에 있는 어떤 악한 사람으로부터 주도권을 빼앗아 오고, 선택의 권한을 되찾아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 3:16).
For God so loved the world that he gave his one and only Son, that whoever believes in him shall not perish but have eternal life. (John 3:16 N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