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이 유대인들의 잘못된 관행들을 지적하시는데 우리가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유대인들의 자선과 헌금 행위에 대해서 지적하셨습니다. 그렇다고 헌금과 자선을 하지 말라고 가르치신 것이 아닙니다. 자선과 헌금을 하되 가치를 떨어뜨리는 방법으로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기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이 기도하지 말라고 가르치신 것이 아니라 기도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방법으로 기도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기도는 신앙의 중심이고 전부라는 것은 여러분이 잘 아십니다. 기도생활에 성공하면 신앙생활에 성공한 것입니다. 기도생활에 실패하면 신앙생활에 실패하는 것입니다. 기도가 신앙생활의 중심인 이유가 무엇일까요? 기도는 결국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께 나를 그대로 내어 놓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이 바벨론 포로로 잡혀가고 성전이 파괴되어 규칙적인 예배를 드리지 못했다 할지라도, 그 예배를 대체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규칙적인 기도입니다. 규칙적인 기도가 그들 신앙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은 하루 2-3번 규칙적으로 기도하는 것이 몸에 배어 습관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 습관이 무서운 것입니다. 습관은 영성입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이 규칙적인 기도는 계속 이어졌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 사이에도 유대인이면 그 습관은 계속하여 이어졌다고 봅니다. “오후 세 시 기도를 하는 시간이 되어서,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으로 올라가는데.(행3:1)” “이튿날 그들이 길을 가다가, 욥바 가까이에 이르렀는데, 그 때에 베드로는 기도하려고 지붕으로 올라가 있었다. 때는 오정쯤이었다.(행10:9)” 베드로와 요한도 시간을 정해 놓고 기도하는 습관을 가졌습니다. 예수님 믿기 전부터 생긴 습관입니다. 예수님의 기도도 유대인들의 배경 안에 견고히 위치하고 있다고 믿어야 합니다.
“주의 공의로운 규례를 생각하면서, 내가 하루에도 일곱 번씩 주님을 찬양합니다.(시119:164)” 이렇게 유대인들은 시간을 정해 놓고 기도하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물론 개인 기도도 했지만 공동체 기도도 규칙적으로 했습니다. 그들은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서서도 기도했습니다. 그들은 주로 쉐마를 암송했고(기도이고 고백), 축복기도를 했고, 감사의 기도를 했고, 참회와 회복을 위한 탄원기도도 했고, 하나님 사랑의 통치에 대한 감사와 평화를 구하는 기도도 했습니다. 이러한 유대인들의 좋은 습관은 그대로 예수님이 이어 받았고, 유대 그리스도인들도 이어받았습니다. 그들은 규칙적으로 시간을 정해 놓고 기도하였습니다. 감사기도를 드렸습니다(롬7:25). 무릎을 꿇고 기도 했습니다(행21:5). 서서 기도도 했습니다(막11:25).
예수님이 유대인들이 그렇게 규칙적으로 다양한 기도를 하는 습관을 나무라지 않았습니다. 예수님도 그렇게 기도했고, 예수님의 제자들도 그렇게 기도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어떤 기도가 가장 좋다고 말씀하신 적은 없습니다. 새벽 기도가 저녁기도보다 우월하다거나, 산 기도가 집 기도보다 우월하다거나 그런 말을 하신 적이 없습니다. 다 소중하고 중요합니다.
새벽기도가 최고야! 하면서 절대화시킬 필요는 없습니다. 예수님도 새벽기도를 하셨지만 그냥 정해 놓은 시간에 기도하신 것입니다. 시간은 어느 때건 성스러운 것입니다. 새벽이건 저녁이건 정오건 시간은 성스러운 것입니다. 예수님이 강조 하신 것은 오직 “너는 기도할 때에,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서, 은밀하게 계시는 네 아버지께 기도하여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아 주실 것이다” 라고 강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 3:16).
For God so loved the world that he gave his one and only Son, that whoever believes in him shall not perish but have eternal life. (John 3:16 N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