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에는 큰 아들과 둘째 아들이 함께 자리 하고 있습니다. 나에게는 비은혜와 은혜가 함께 자리하고 있습니다. 큰 아들은 열심히 자기 일을 하고, 그것에 대한 대가를 바라는 사람입니다. 만약 그에게 대가가 주어진다면 그것은 그가 열심히 일해서 받을 만하기 때문에 받은 것에 불과합니다. 그는 다른 사람을 평가하는데 익숙합니다. 그의 동생이 허랑방탕하였는데 아버지로부터 환대를 받는 것에 대해서 이해가 되지 않는 사람입니다. 대접을 받을 만한 행동을 하지 않았는데 대접을 받는 것은 그의 이해를 넘는 것입니다. 그는 아버지의 명령을 단 한 번도 어긴 적이 없습니다. 매사에 법을 지키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동생이 명령을 어기고 방탕한 삶을 산 것에 대해서 용납이 되지 않습니다. 그는 마땅히 저주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큰 아들은 아버지의 마음을 다 읽지 못한 사람입니다. 아버지와 함께 살지만 큰 아들은 아버지 앞에 현존한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의 현존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큰 아들은 매사에 분명하고 정확하기 때문에 아버지의 마음은 자기에게 더 가 있는 것으로 착각하면서 삽니다. 아버지는 집을 나간 작은 아들을 기다리시고 있다는 것을 큰 아들은 알지도 못하고, 생각지도 못합니다. 그는 비은혜 가운데 살아갑니다. 나에게는 예수님을 믿기 전이나 예수님을 믿은 후에도 여전히 큰 아들과 같은 마음이 존재합니다.
그러나 나에게는 작은 아들과 같은 면도 있습니다. 작은 아들이 제정신이 돌아왔을 때는 도울 사람이 옆에는 아무도 없고, 모든 것이 부족하여 궁핍함을 당했을 때였습니다. 배가 고파서 죽을 지경이었습니다. 작은 아들은 그때도 살아날 궁리만 하였습니다. 아버지 집에 있는 품꾼도 이렇게 비참하게 살지는 않는다는 것을 생각하고 아버지에게로 돌아가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제 정신이 돌아온 이유도 자신의 육신의 삶에 도움이 되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작은 아들은 실천에 옮깁니다. 아버지께도 돌아갑니다.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는 멀리서도 작은 아들을 알아봅니다. 측은히 여겨 달려가서 작은 아들은 껴안습니다. 작은 아들은 미리 생각했던 대로 하나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 말에는 신경도 쓰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종들에게 명령하여 잔치를 준비합니다. 반지를 끼우고 신발을 신기고 옷을 갈아입힙니다.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잡고 잔치합니다. 작은 아들은 예기치 않게 큰 대접을 받게 됩니다. 아버지의 은혜와 긍휼을 경험으로 받게 됩니다.
나에게는 작은 아들과 같은 면도 존재합니다. 나는 27세가 되기까지 하나님을 모르는 작은 아들이었다. 수차례에 걸쳐 아버지께로 돌아갈 기회가 있었지만 나는 다 거절하였습니다. 군대를 제대하고 복학을 하고야 나는 제 정신으로 돌아왔습니다. 궁핍하고, 광야 같은 곳에서, 도와줄 사람도 없는 상태에서, 다시 한 번 아버지께로 돌아갈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나는 응답하여 교회 공동체에 속하게 되었습니다. 교회 다닌지 1년 반 정도의 세월이 흐른 후에 나는 예수님이 믿어지게 하여 달라고 기도하는 중에 예수님을 영혼으로 믿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나에게 찾아와 주셨습니다. 그때 내가 죄인이라는 것을 깊이 깨닫게 되었고, 그 죄 때문에 예수님이 죽으시고 부활하셨다는 대속의 은혜가 믿어졌습니다. 그때 하나님과 나 사이에 유일한 중보자가 바로 100프로 신성, 100프로 인성을 가지신 예수님이라는 사실이 믿어졌습니다. 내 인생에 가장 축복받은 시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내 죄가 예수님의 보혈로 용서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사실이 믿어졌습니다. 이 세상이 줄 수 없는 구원의 기쁨을 친히 경험하였습니다.
그때 나는 기도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심이 이제야 믿어집니다. 그렇다면 나의 남은 인생을 주님께 드리겠습니다.” 나는 그때 나를 주님께 드리는 것이 신학교 가서 목사가 되는 길이 주님께 나를 드리는 최상의 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내 속에 있는 큰 아들 같은 성품이 여전히 자주 나타났습니다. 넘어지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내 속에 있는 작은 아들이 나타나 나는 다시 주님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내 영혼은 다시 일어났습니다. 또 세월이 흐릅니다. 또 큰 아들이 나타났습니다. 또 넘어집니다. 작은 아들이 나타납니다. 다시 주님 앞에 무릎을 꿇고 일어납니다.
또 세월이 흘러 나는 이제야 다시 깨달았습니다. 주님을 위해 산다는 것은 반드시 목사가 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주님을 위해 산다는 것은 내 마음 깊이에 계신 하나님의 현존 앞에 나의 현존을 세우면서, 주님을 죽도록 사랑하는 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예수님을 모든 면에서 닮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무엇보다 네 마음을 지켜라. 마음은 생명의 원천이다”(잠4:23). 이 말씀을 마음에 품겠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 3:16).
For God so loved the world that he gave his one and only Son, that whoever believes in him shall not perish but have eternal life. (John 3:16 N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