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na 24

제자들, 여행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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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싫어하는 사람은 드물 것입니만 특별히 그리스도인들은 여행을 자주, 잘해야 합니다. 돈 없으면 은행에서 빌려서 여행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행은 나를 새로운 각도에서 볼수있게 만들어 줍니다. 사람들을 새로운 각도로 볼 수 있게 하여 줍니다. 자연을 새로운 각도로 볼 수 있게 하여 줍니다. 결국 하나님을 새롭게 만날 수 있게 하여 줍니다. 그래서 여행은 나를 성장시켜주는 힘든 훈련입니다. 여행을 통해서 우리의 시야는 넓어지고, 동시도 고생도 합니다. 영적 여행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적 성장의 기쁨도 있지만 동시에 힘듦도 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출애굽 후에 광야에서 고생했습니다. 그 고난을 통해서 그들은 훈련되었고, 성장했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가나안을 정복했습니다.

무엇 때문에 예수님은 12제자들에게 익숙한 곳을 떠나는 전도 여행을 하라고 명하시면서 준비물을 디테일하게 가르쳐 주셨을까? 21세기를 살아가는 제자들에게 12제자들의 전도 여행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예수님이 명령한 것이라면 2,000년전 당시만이 아니라 지금까지도 예수님을 믿는 제자들에게 효력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의도는 여행이라는 메타포(은유)를 사용하여 그리스도인들이 익숙한 곳, 익숙한 것에서 떠나는 여행을 하여야 성숙이 일어난다는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 여행이 외면 여행이든지 내면 여행이든지 말입니다.

제자들은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요? 준비 할 것이 없습니다. 홀가분하게 다니면 됩니다. “전대에 금화도 은화도 동전도 넣어 가지고 다니지 말아라. 여행용 자루도, 속옷 두 벌도, 신도, 지팡이도, 지니지 말아라. 일꾼이 자기 먹을 것을 받는 것은 마땅하다.”(마10:9-10) 첫째는 돈 필요없다고 하십니다. 돈 의존하지 말고 주님을 의뢰하라는 것입니다. 돈으로 음식을 공급받지 말고 사람들의 사랑으로 음식을 공급받으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짐보따리 가지고 가지 말라고 하십니다. 이 주머니는 구걸하는데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속옷은 한 벌만, 신도 한 벌만, 불필요한 지팡이는 가지고 가지 말라고 하십니다. 결국 아주 홀가분하게 떠나라는 것입니다.

여행객을 영접하고 친절을 베푸는 것은 고대 지중해 연안 문명권, 특히 유대교에서 가장 중요한 미덕 중 하나였습니다. 이스라엘 전통에 따르면 아무리 악한 왕이라도 선지자를 존중해야 했습니다. 악해도 선지자를 해치지는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최소한 제자들을 선지자들을 대하듯이 할 것이라는 믿음으로 보낸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전통을 의존하였습니다. 참 이스라엘인이라면 제자들을 선지자로 대접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제자들이 할 여행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목적지와 할 일이 정해지지 않은 여행입니다. “아무 성이나 아무 마을에 들어가든지, 거기에서 마땅한 사람을 찾아내서, 그 곳을 떠날 때까지 거기에 머물러 있어라. 너희가 그 집에 들어갈 때에, 평화를 빈다고 인사하여라. 그래서 그 집이 평화를 누리기에 알맞으면, 너희가 비는 평화가 그 집에 있게 하고, 알맞지 않으면 그 평화가 너희에게 되돌아오게 하여라.”(마10:1-13) 제자들이 여행시 행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아무 성이나 아무 마을에 들어가서 거기에서 평화를 받을 만한 사람을 찾아내서 떠날 때까지 머물르는 일입니다. 제자들의 여행의 특징이 무엇인가요? 목적지가 정해지지 않았다는 것이고, 도울 사람이 정해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 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떠나는 것입니다. 그 일은 하나님이 하실 것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떠나는 영적 여정은 목적지도 분명하지 않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 날지도 잘 모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영적 여행을 떠나기를 겁내는 것입니다. 익숙한 곳이 좋고 익숙한 것이 좋은 것입니다. 생소한 곳을 걸어가기 싫은 것입니다. 미래가 불확실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불확실한 곳을 향하여 떠날 때 영적 성장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예수님의 이 여행 명령을 실천하던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요한 클리마쿠스의 거룩한 등정의 사다리. 3번째 덕이 바로 “유랑생활”입니다. 유랑생활이란 온전히 하나님께 메달리기 위해서 모든 것을 떠나는 것입니다.

4세기경 신앙의 세속화를 극복하기 위해서 사막으로 도피하였던 운동이 있었습니다. 이집트 사막운동이었습니다. 그들은 사막으로의 가볍게 하고, 사막으로 떠났습니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 채 떠났습니다. 정확한 목적지도 없이 떠났습니다. 하나님을 닮은 삶을 위해서 떠났습니다.

그후 켈트족 수도사들은 뻬레그리나치오(peregrinatio)라는 훈련을 중요한 훈련으로 여겼습니다. 뻬레그리나치오는 여행을 의미합니다. 하나님 사랑을 위한 방랑이라고 불렀습니다. 목적지가 정해지지 않는 여행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위해서 여행했던 유랑 성도들은 목적지없이 떠났습니다. 가끔 그들은 삿대나 키도 없는 작은 배를 타고 떠났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사랑의 물결에 자신들을 맡겼습니다. 바다나 강이 그들이 선택하지 않은 안식처로 데려다 줄 것을 믿었습니다. 그 여행의 동기는 늘 사랑이었습니다. 하나님만이 그들의 목적지였고 길이었습니다.

내면이든지, 외면이든지 그리스도인들은 여행을 과감히 떠나야 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 3:16).
For God so loved the world that he gave his one and only Son, that whoever believes in him shall not perish but have eternal life. (John 3:16 N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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