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na 24

맞춤형 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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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엿새 뒤에, 예수께서는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으로 가셨다.”(마17:1)

예수님이 베드로, 야고보, 요한 등 세 제자들을 따로 데리고 변화산에 오르시는 장면입니다. 변화산에서는 무슨 사건이 있었나요? 예수님의 얼굴이 해와 같이 빛나고 옷은 빛과 같이 희어졌습니다. 이것만이 아닙니다. 모세와 엘리야로 더불어 예수님이 대화한 사건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친히 세 제자들에게 말씀하시는 소리도 있었습니다. 모두 다 대단한 사건들입니다. 율법의 대표자인 모세, 예언의 대표자인 엘리야가 나타나서 예수님과 대화를 했습니다. 만약 제자들이 이 사건을 이야기하고 다닌다면 호기심 많은 백성들이 예수님께 몰려 올 것입니다. 예수님은 더 이상 제자들을 훈련할 수 없기 때문에 그 이야기를 하지 말라고 경고할 정도였습니다. 그렇게 대단한 사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가장 중요한 주제는 아닙니다. 변화산에서의 가장 중요한 주제는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 그리고 그 후 부활이라는 주제입니다. 마16장 16절에서 베드로는 예수님을 주는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이때부터 예수님은 성경의 가장 중요한 주제인 십자가 죽음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그 때부터 예수께서는, 자기가 반드시 예루살렘에 올라가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사흘째 되는 날에 살아나야 한다는 것을, 제자들에게 밝히기 시작하셨다.”(마16:21) 이에 대해서 베드로가 절대로 아니 된다고 말합니다. 비상사태입니다. 왜 비상사태입니까? 가장 중요한 주제인 십자가 죽음을 제자들이 받아들이지 아니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주님은 제자도에 대해서 가르치고, 바로 17장이 열립니다. 이로보아도 변화산 사건도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이 가장 중요한 주제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제자들이 분명히 이해하고 받아들이도록 하기 위해서 변화산에 세 제자들과 오른 것입니다.

세 제자들을 선택하신 것도 예수님의 중요한 훈련 방법입니다.

겟세마네 동산에 기도하러 가실 때도 세 명을 따로 데리고 가셨습니다. 차별대우를 한 것이 아닙니다. 훈련의 효율성을 위하여 그렇게 하시는 것입니다. 만약 12제자들을 다 데리고 가셨다면 주제는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이 아니라 다른 주제에 대해서 대화하느라고 시간을 다 보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죽으시고 부활하시기 전까지는 이 일을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지 말라고 하신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선택으로 말미암아 한 주제에 집중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성공했을까요? 어느 정도 성공했습니다. “제자들이 예수께 물었다. “그런데 어찌하여 율법학자들은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한다고 합니까?”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확실히, 엘리야가 와서, 모든 것을 회복시킬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엘리야는 이미 왔다. 그러나 사람들이 그를 알지 못하고, 그를 함부로 대하였다. 인자도 이와 같이, 그들에게 고난을 받을 것이다.” 그제서야 비로소 제자들은, 예수께서 세례자 요한을 두고 하신 말씀인 줄을 깨달았다.”(마17:10-13)

제자들이 질문을 아주 잘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자꾸 고난을 당하시고 죽어야만 한다고 가르치니까, 세 제자들은 오랫동안 품어왔던 의문 한 가지를 주님께 털어놓습니다. 그들이 배워온 것이 무엇입니까? 메시아가 오기 전에 엘리야가 온다는 것입니다. 율법학자들은 말리기서를 통하여 엘리아를 그렇게 가르쳤습니다. 이 질문에 대해서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말리기 선지자가 그렇게 예언한 것은 맞고, 율법학자들의 해석은 틀렸다고 하십니다. 예수님의 해석은 이것이었습니다. “확실히, 엘리야가 와서, 모든 것을 회복시킬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엘리야는 이미 왔다. 그러나 사람들이 그를 알지 못하고, 그를 함부로 대하였다. 인자도 이와 같이, 그들에게 고난을 받을 것이다.” 그제서야 비로소 제자들은, 예수께서 세례자 요한을 두고 하신 말씀인 줄을 깨달았다.” 기가 막힌 해석입니다. 예수님은 세례 요한이 바로 엘리야의 영성을 가지고 왔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엘리야를 백성들이 죽였습니다. 그렇다면 메시아를 지적하는 마지막 선지자를 죽였다면 그가 지적하는 메시아를 죽이지 않겠느냐 라는 것입니다. 이 순간 세 제자들의 머리에 불이 켜졌습니다. Aha! moment가 임한 것입니다. 이런 영성의 부류를 생각형(지성형)이라고 부릅니다. 세례 요한이 다시 온 엘리야라면 그분이 고난을 당하시고 죽으셨으니까 그분이 지적하신 예수님도 죽으시는 것이구나! ‘그제서야’ 비로소 제자들은, 예수께서 세례자 요한을 두고 하신 말씀인 줄을 깨달았습니다. 그렇다면 엘리아가 이미 왔다 갔으니까 예수님이 메시아로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것은 당연하다! 이렇게 세 제자들이 믿게 된 것입니다.

12제자들을 다 데리고 갔다면 이런 일이 안 일어날 수 있습니다. 감정형들은 “그래도 느낌이 안 와!”했을 것입니다. 존재형들(신비형)은 “엘리야도 불병거로 죽지 않고 올라가셨는데 예수님도 그렇게 하면 안 될까?” 했을 것입니다. 행동형들은 “그래도 예수님이 불의한 로마 병정에게 의로운 칼을 들어야 하지 않을까?”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 3:16).
For God so loved the world that he gave his one and only Son, that whoever believes in him shall not perish but have eternal life. (John 3:16 N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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