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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지지 않는 사람들 – 이원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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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상 목사님은 목회일념의 전형이라 할만큼 와싱톤중앙장로교회와 그에 속한 성도들을 떠나서는 달리 표현할 길 없는 충성된 종이었다.   그의 설교는 주해를 중심한 강해로 일관되어 혹 비평의 대상이 되기도 했으나 예화없는 말씀중심의 고집스런 강론은 은퇴까지 이어졌다.  따라서 이목사님과 함께 신앙의 연륜을 쌓아간 성도들은 그의 설교에 푹빠져서 신세대 후임목사가 한동안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그가 1977년부터 2003년까지 26년간 와싱톤중앙장로교회를 담임하며 미주를 대표하는 대형교회이자 건강한 교회로 성장시킨 이면에는 이러한 목양설교적 태도를 변함없이 유지한데 있었다.  그는 만주출생으로 경북 경산과 대구에서 청년기를 보내면서 대학(계명대)과 대학원(경북대)에서 철학을 전공하였고 한때 경산의 메노나이트계통의 미션스쿨에서 영어를 가르쳤다.  미국에 오기전 총신(합동)에 시험을 치뤄 합격했으나 달라스신학에 유학오게 되어 늘 한국신학에 대한 목마름이 있었고 총신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던 분이다.  그래서인지 총신대학 합창단의 미주공연때는 늘 앞장서 도움을 주었다.  그의 평소 취미라면 시를 쓰는 것으로 한권의 시집 “ 내 양을 먹이라”를 발간하였다.

시집출판 기념예배에 백순 장로가 이 목사님은 이제 “이 시인”이라고 해서 만장의 웃음을 선사하기도 했다.  그를 추억하는 워싱턴 교계의 원로들은 한결같이 인내의 종이었다고 평한다.  그가 목회하는 동안에는 별다른 잡음없이 평안하게 교회가 성장했던 중요한 요인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교회성장에 몰두하다보니 교계에 대한 돌봄이 부족했던 것은 사실이어서 특히 내가 많이 불편함을 토로했다.  그러던중 워싱턴 교협이 워싱턴 청소년재단을 설립하게 되면서 많은 지원을 아끼지 않게 되어서 목사님에 대한 편견이 많이 수정되었고 재단의 초대 이사장까지 역임하게 되었다.  그 이후 많은 만남이 이루어져 그 인격의 고매함과 진실됨에 감탄하였다.  지금은 없어진 123도로 변에 “마르코 폴로”에서 늘 야채중심의 뷔페를 권하셨다.  그분의 사모님은 약사로서  내 처 숙부 김상열 장로의 제자이다.  평생 목회일념의 목사님곁에서 그림자처럼 내조하시므로 오늘날의 중앙장로교회로 성장시키는데 큰 공을 세우신 분이다.  목사님은 은퇴후에도 영국 웨일스대학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할만큼 학구파였으며 시드선교회를 설립 세계선교회 꿈을 펼쳐 오늘날까지 활발하게 모범적 선교회가 되고 있다.  한편 프레션 기도운동에도 앞장서 워싱턴의 기도운동의 불씨를 살렸다.  2016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으니 벌써 5년이나 지났다.  그는 평생 교회외는 다른 일에 매달리지 않는 교회인이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 3:16).
For God so loved the world that he gave his one and only Son, that whoever believes in him shall not perish but have eternal life. (John 3:16 N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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