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na 24

잊혀지지 않는 사람들 – 김윤국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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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목사님은  신학을 목회에 접목시킨 보기드문 실천신학자이며 이 시대에 존경받는 목회자였다. 한국과 미국을 넘나들면서 신학교에서 교수하며 목회한 하나님의 종이었다.

한국의 예장이 둘로 나뉘기전 남산신학교(박형룡 교장)에서 소장교수로 동년배 학생들을 가르쳤다. 후에 서울 영락교회 3대 목회자를 지내면서 여러 일화를 남겼는데 너무 많은 당회원 때문에 당회를 밤새워 해야 할일들이 있어 스톱워치를 가지고 발언시간을 제한하시고 했다고 한다.

자녀들이 거주하는 워싱턴 인근 북버지니아에 정착하신후에도 각종 세미나를 인도하시고 이민신학교에서 강의하시는 등 그의 사전에는 은퇴란 없는듯하였다. 그는 평북 강계출신으로 자수성가한 목사중 한분으로 당시 손꼽는 미국 유학파였다.  장신에 호남형의 목사님은 신학박사인 동시에 법학박사로서 PCUSA에 오랫동안 몸담았다. 그는 평양신학의 전통을 잇는 보수적 복음주의자로서 일생을 헌신하였다. 그는 일제치하와 한국동란 등에서 체험한 자전적 수기 “산넘고 물건너”,“ 태평양을넘어서 ” 2권을 남겼는데 원적이 평북 철산인 나는 밤새워 장편수기를 읽으면서 조상들의 고향땅을 미루어 짐작할수 있었다.

목사님은 워싱턴원로목사회장을 지내면서 명칭문제의 법리적 해석을 강하게 주장하기도 했다. 사모님 역시 평안도 출신으로 남편못지 않은 학구열로 미국고등학교의 교사를 지냈다. 목사님이 피란후 경북사대를 다니셨다는 말씀을 듣고 지금은 없어진 초원식당에 장인내외분과 함께 정담을 나눈 일이 기억에 새롭다.

그는 그토록 오랜 타국생활을 했음에도 평안도 특유의 사투리를 늘 구사하였다. 한번은 동향친구에게 전화했더니 그 집 손자가 받아 투박한 이북말로 “ 할아버지 바꾸라우 “ 했더니 이 녀석 대뜸 하는 말이 “ 갸는 잔다 넌 누구냐?”해서 살소를 금치 못했다 한다. 장군이 멍군이 된 셈이다. 그토록 정정하섰던 분 94세 일기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그의 카이로스는 거기까지였던 것이다.  워싱턴교계는 정녕 잊을수 없는 훌륭한 어른들을 많이 모신 복된 곳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 3:16).
For God so loved the world that he gave his one and only Son, that whoever believes in him shall not perish but have eternal life. (John 3:16 N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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