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na 24

세월이 37년하고도 몇 개월이 지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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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37년하고도 몇 개월이 지났습니다. 

정확하게는 1987년 1월 10일 오전에 한국의 김포 공항을 출발한 비행기가 오전에 시카고 공 항을 경유해서 워싱턴 내셔널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정말로 청운의 꿈을 안고 아내가 기다리는 볼티모어에 1살 된 딸 정미를 포대기에 업고 이 땅에 도착했습니다. 얼마나 땀을 많이 흘렸는지 그 당시에 유행하던 오리털 잠바는 너무 땀에 절여져서 입지 못하고 버렸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워싱턴에서 만 땀에 절은 것이 아니라 이미 시카고에서부터 땀에 젖는 일이 생겼던 것입니다. 

지금도 그 때 일을 생각하면 웃음이 저절로 나옵니다. 

아마도 이민 초창기에는 다 그런 경험들을 하셨을 것 같아서 이런 일을 나의 이민 초기의 신앙 생활에 어떠한 일로 해석할까 하는 정도였습니다. 

가만히 돌아 보면 그 경험이 오늘의 나를 만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시카고 공항에 도착해서 짐을 찾는 곳에서 짐을 찾아서 다시 워싱턴으로 부쳐야 했는데 정 의 물건이 하나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분실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 안에는 정미의 분유와 기저귀, 옷가지 등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 짐을 찾기 위해서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여간 그 넓은 시카고 공항을 정신 없이 뛰어 다 녔습니다. 아무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결국에는 그 넓은 곳에서 한국말로 ‘누구 한국말 하는 사람없어요’ 하고 소리를 쳤습니다. 한국말 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와우! 1978년 

손에 짐을 들고 포대기로 아기 하나는 등에 업었지 이마에는 땀이 줄줄 흘러 내리고 있지 오리털 잠바는 축 늘어져 있지 헐떡 거리고 뛰어 다니던 내 모습이 안스러웠는지 승무원 한 사람이 다가와서 걱정하지 말라고 여기서 못 찾으면 못 찾은 짐에 네가 도착지의 주소를 바로 적어 놓았다면 워싱턴에 도착하면 그 곳에 도착해 있을 것이라고 말하는 바람에 겨우 숨을 돌리고 비행기를 타고 워싱턴에 도착을 했습니다. 그런데 웬걸 우리 정미 짐은 영영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아직까지도 못 찾았습니다.

누구든지 미국에 처음 오면 미국에 온 값을 치룬다고 후에 들은 말인데 아마 이 사건이 내가 미국에 온 값을 치룬 것인가 보다 하는 마음을 가지고 그다음부터는 지금처럼 공항마다 한국 사람들이 넘쳐 나는 날이 오기는 했지만 ‘그래 내가 이 일을 도와야지’ 하는 마음이 생겼 던 것입니다.

내가 만난 미국의 첫 경험이 복음의 복음 경험이 아니라 사회적인 경험이었기에 내 복음은 사 회적인 경험과 맞물리게 되었습니다. 가는 길이 순탄해야 할텐데 하는 바람을 가지고 미국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 3:16).
For God so loved the world that he gave his one and only Son, that whoever believes in him shall not perish but have eternal life. (John 3:16 N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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