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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최초의 여의사’ 박에스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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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여성 최초로, 볼티모어 여자 의과 대학(Woman’s Medical College of Baltimore) 에서 서양 의학을 공부하고, 의사가 된 박에스더는, 1900년 가을, 미국 메릴랜드주 볼티모어 외곽에 위치한 로레인 파크 공동묘지 를 찾았다. 박에스더의 의술이 필요한 조선의 백성들에게로 이제 다시 돌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한 묘비 앞에 서 있는 박에스더는, 쉽게 발길을 옮길 수가 없었다.

그 묘비에는 영문으로 ‘Yousan Chairu Pak’ 이라는 이름과 함께, 1868년 9월 21일 한국에서 출생, 1900년 4월 28일 볼티모어에서 사망했다고 새겨져 있었고, 영문으로 “내가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마태복음 25:35)라는 성경구절도 함께 쓰여 있었다. 그 묘비는 바로, 사랑하는 남편 박여선(朴汝先) 의 묘비였다.

많은 상처와 아픔을 간직했던 박에스더. 하지만 위기에 서 있던 유대 민족을 구했던 성경 속 에스더처럼, 박에스더는 조선 백성들의 육신의 질병뿐만 아니라, 마음의 질병까지 어루만지고 치료했던, 조선 최초의 여의사로 짧지만 밝게 빛났던 별로 기억되고 있다.

140여 년 전, 흰 무명 치마저고리를 입었고, 가난했으며, 이름조차 가지고 살지 못했던 조선의 여성들이 있었다. 이들의 삶은 항상 고달팠고, 절망적이었으며, 희망을 꿈꿀 내일을 모르고 살던 사람들이었다. 그랬던 조선의 여성들에게 희망과 새로운 세상을 열어주었던 이들이 있었다. 복음의 기쁨과 구원의 빛을 비춰주었던 낯선 이방인들. 바로 여선교사들이다.

그 중 ‘평양의 어머니’라고 불렸던, 로제타 셔우드 홀(Rosetta Sherwood Hall, 1865-1951)이 있다. 1865년 미국 뉴욕주 리버티에서 출생한 로제타는, 1885년 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잠시 교직에 몸담다가, 이듬해 펜실베니아 여자 의과 대학에 진학하여, 1889년 졸업한다. 졸업 후 뉴욕의 빈민촌에서 의료 선교를 하던 중, 후에 남편이 될, 윌리엄 제임스 홀(William James Hall, 1860-1894)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드디어 1890년 10월, 감리교 여성 의료 선교사로 파송되어, 조선에 도착하게 된다.

19세기 말, 미국 교회에 불었던 선교적 부흥에 힘입어, 그리스도인들은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헌신하며 사는 것을 특별한 부르심으로 여겼다. 그리고 많은 여성들이 이 일에 동참했다.

“인류를 위해 봉사하려거든, 아무도 가려고 하지 않는 곳으로 가서, 아무도 하려고 하지 않는 일을 하라.”

1837년 여성을 위한 대학인, 마운트 홀요크 여성신학교(Mount Holyoke Female Seminary)를 세운 메리 라이언(Mary Lyon, 1797-1849)이 해외선교를 적극 권장하며 했던 유명한 말이다.

1892년 일기에서 로제타는, 이 말이 자신을 해외선교로 이끄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썼다.

조선에 도착해, 바쁜 나날을 보내던 로제타는 자신의 일기에 그 당시 여성들의 모습을 이렇게 기록했다.

“조선의 여성들은 이름이 없다. 그들은 작은 애, 혹은 예쁜이라고 불리는데, 결혼을 하고 아들을 낳아야만 ‘창식이 엄니’같이 아들의 이름에 따라 누구의 엄마라고 불린다.” – 1890년 10월 20일

그 당시 조선의 여성들은, 남성들에게 도움을 주고, 희생해야 하는 존재였지, 한 사람의 동일한 인격체로 여겨지지 않았고, 그런 의식조차 가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이름이었다. 어려서는 누구 집 딸로, 결혼 후에는 누구 댁으로, 자식을 낳은 후에는 누구 어멈 혹은 할멈으로 불렸다. 철저히 남성 중심의 칭호였다. 이것이 ‘이름 없이’ 지내 온 전통사회의 여성이었다. 이 ‘이름 없음’은, 곧 ‘존재 없음’의 의미이기도 했다.

이런 ‘존재 없음’의 여성들에게, ‘여성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남성과 동일한 존재’라는 존재 의식을 심어주는 일에 앞장섰던 이들이 바로 여선교사들이었다.

그리고 이 조선의 여성이라는 ‘존재 없음’을 넘어, 수많은 여성들의, 육신의 질병뿐만 아니라, 영혼까지 보살피며, 그들에게 ‘존재 있음’이라는 새로운 도전을 주었던 이름 셋 가진 여인이 있었다. 그녀가 바로 김점동, 김에스더라고도 불렸던, 조선 최초의 여의사 박에스더다.


1 1882년 개교해, 1910년 폐교될 때까지, 수많은 여성 의사를 배출한 볼티모어 여자 의과 대학은 필자가 조사,       확인한 결과, 기존에 알려진 것처럼, 존스 홉킨스 의과 대학으로 흡수되거나 합병된 것이 아니라, 1910년 폐       교 후 사라졌다.(참고: Harold J. Abrahams. The Extinct Medical Schools of Baltimore, Maryland. Maryland        Historical Society; 1969.) 당시 존스 홉킨스 의과 대학은 대학교육을 거쳐야 들어 갈 수 있는 대학원 과정이      었다. 볼티모어 여자 대학(후에 가우처 대학으로 학교 이름을 변경함)을 졸업한 여학생들에게 존스 홉킨스        의과 대학 입학 자격을 준적은 있었다.

2 박여선의 묘비가 있는 로레인 파크 공동묘지(Lorraine Park Cemetery & Mausoleum)의 주소는 5608                   Dogwood Road. Baltimore MD 21207 이고, 묘지 번호는 Garden of Prayer Section 3의 #337번 묘이다.
묘비에 새겨진 중간 이름(Middle Name) ‘Chairu’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3 보통 박유산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졌는데, 원래 이름은 박여선(朴汝先)이다. 선교사들이 영어로 발음하기           쉽게, 박유산이라고 불렀고, 영문 이름도 그렇게 사용한 듯하다. 1897년 당시 주미공사(駐美公使)였던,서광       범이 작성해, 조선 정부에 보고한 주미내거안(駐美來去案)이라는 책을 보면, 그 당시 미국에 유학하고 있는       21명의 유학생 이름이 나온다. 그곳에 ‘박여선(朴汝先)과 그의 처’라는 기록이 있다. 또한 1900년 11월에           발행된 신학월보의 박에스더 환국 소식에도 박여선이라 기록되어 있다.

4 박정희, ≪닥터 로제타 홀≫, 다산북스, 2015, 283쪽.

5 박정희, ≪닥터 로제타 홀≫, 다산북스, 2015, 155쪽.

6 이덕주, ≪한국교회 처음 여성들≫, 기독교문사, 1990, 68쪽.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 3:16).
For God so loved the world that he gave his one and only Son, that whoever believes in him shall not perish but have eternal life. (John 3:16 N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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