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na 24

역시 소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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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 불만의 결과를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젊었다는 생각에 그것은 그것 이것은 이것이라는 마음으로 한 교회의 파트 타임 전도사로 이민자 안 전도사의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제가 살던 곳은 에섹스 그리고 제가 섬겨야 할 교회는 글렌버니 지역에 세워진 지 7년이 되 는 자그마한 교회였습니다. 지금이야 운전 실력이 많이 늘어서 30분 정도의 거리지만 당시만  해도 40분 이상의 거리였습니다. 물론 그 당시에는 다 자그마한 교회였지만 자신 만만했습니 다. 왜냐하면 저는 소대장 기질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대학 생활을 할 때 교련이라는 필수 과 목이 있었습니다. 제가 기계 설계과 출신인데 과 소대장을 했습니다. 해병대는 아니지만 안  되면 되게 하라는 것이 제 좌우명이기도 했습니다.

제가 한국에서 신학교를 다니고 한 교회에서 전도사로 섬기고 있었고 아내가 앞으로 제가 이 민 가야 할 메릴랜드의 한 교회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그 교회는 규모도 있었기 때문에 제가  미국 가면 그 교회 전도사로 섬길 수 있게 해 달라고 그 교회 목사님이 한국에 부흥 성회에  나오셨을 때 교단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교회 수석 장로님이셨던 아버지의 도움을 통해서 그  목사님을 교회에 강사로 초청하셔서 설교를 부탁하셨고 우리 아들이 미국에 가면 잘 도와 달 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저는 옆에서 그 이야기를 다 듣고 미국에 가면 이제 전도사를 할  수 있겠구나하는 꿈에 부풀어 있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미리 약을 처 놨으니 아무 걱정 없이 미국에 도착했던 것입니다.

제가 미국에 도착하고 몇 일 후 저녁에 그 교회 목사님과 사모님이 심방을 오셨습니다. 결론 안 전도사, 전도사 같은 것 할 생각하지 말고 열심히 공부하세요였습니다.

제 속에서 ‘아니 전도사하면서는 공부 못하나요?’ 그것으로 끝이였습니다. 이유는 분명합니다. 목사님 말씀은 교단이 달라서 그렇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믿음이 없었으면 그 밤에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잡았던 줄이 썩은 동아줄이 였던 것이었습니다.

다음 날부터 전화번호부를 뒤졌습니다. 혹시 장신 동문이 없나 하고 말입니다. 제가 장신 출 신이니 아무래도 동문들의 도움을 받아야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입니다.

찾고 찾았던 것 한 특정 교회였고 그 목사님은 장신 선배였습니다. 통화가 된 다음 날이 토요 일인데 글렌버니에서 친히 오셔서 저를 엑섹스 어딘가에 있었던 피자 헛에 데리고 가셔서 함 께 섬겨 가면 어떻게냐는 제안을 하셨고 저는 생각이고 뭐고 없이 ‘네’라고 대답을 했고 3월 첫 주부터 나와 달라고 하셨습니다.

장모님은 베이비 시터를, 아내는 빵 공장에 다니면서 그리고 저는 전도사 월급으로 생활비를  보탰습니다. 말이 생활비를 보탠 것이지 한 달에 400달러를 받아서 청소년들과 어울리고 톨비  내고 그러면 오히려 집에서 생활비를 받아서 사용해야 되는 지경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얼마 나 내 자신은 즐겁고 행복했는지 모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 3:16).
For God so loved the world that he gave his one and only Son, that whoever believes in him shall not perish but have eternal life. (John 3:16 N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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