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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최초의 여의사’ 박에스더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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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0년 10월 로제타 홀 선교사가 조선에 도착해 일했던 곳이 바로 보구여관(保救女館)이다. ‘보호하고 구하는 여성들의 집’이라는 뜻으로 명성황후가 이름을 하사했다. 보구여관은 남녀유별의 조선 사회에서, 의료혜택이 취약했던 조선 여성들을 위해, “여성을 위한 여성의 일(Woman’s Work for Woman)”이라는 모토를 가지고 있던, 미감리교 여성해외선교부의 지원으로 만들어진 공간이었다. 1887년 10월 설립된 조선 최초의 여성병원이었던 보구여관은, 후에 오늘날의 이대 부속 병원으로 성장하게 되는데, 로제타가 2대 책임자로 발령되었던 것이다.

일손이 필요했고, 조선의 말과 문화에 익숙지 않았던 로제타를 위해, 이화학당에서는 몇 명의 학생들을 보구여관으로 보내, 돕도록 했는데, 그중에 하나가 바로 김점동이다.[i]

“진료소에 통역을 제법 잘하는 점동이라는 학생 하나와 둘이서 일한다. 점동이는 영어를 잘하는 열네 살의 건강한 소녀인데, 영리하고 재빨라서 나는 그 아이를 꼭 훈련시키고 싶다.” – 1890년 10월 24일 로제타의 일기에서[ii]

김점동은 1877년[iii] 3월 16일, 서울 정동에 살던 광산 김씨 김홍택과 연안 이씨 사이에서 태어난 네 명의 딸 중, 셋째 딸이다.[iv] 김점동은 그 시대 다른 여성들에 비하면, 여러 좋은 환경 가운데 자랐다고 할 수 있다. 1885년 감리교 선교사들이, 자신이 살던 정동 근처를, 선교의 근거지로 삼고, 학교를 세우고 선교활동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김점동의 아버지 김홍택은, 첫 감리교 선교사였던, 헨리 아펜젤러 목사(Henry G. Appenzeller, 1958-1902)에게 고용이 되었고, 서서히 서양문물에 눈을 뜨기 시작한다. 그 무렵, 아펜젤러 선교사를 통해, 메리 스크랜턴 선교사가 여학교를 설립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김홍택은 서양 문물과 사상을 접할 수 있고, 음식과 옷을 제공한다는 말에, 한국 근대 최초의 여학교인 이화학당에 김점동을 입학시켰다. 가난했지만, 일찍 서양문물에 눈을 뜨고, 교육열이 높았던 아버지 덕분에, 김점동은 이화학당에서 한글 성경과 교리문답을 배우며, 복음의 진리를 깨닫고 신앙을 키울 수 있었고, 산수, 영어 등 신학문을 배울 수 있었다.

김점동은 보구여관에서 선교사이자 의사인 로제타를 도와 통역과 간호보조 업무를 하며, 되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 없는, 꿈 없는 자신의 삶에, 무엇인가 변화가 오고 있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보구여관에서 서양의학을 처음 접하게 되었던 김점동은, 통역을 하고, 약을 조제하고, 환자를 돌보는 일은 좋아했지만, 피를 보는 수술 같은 것은 싫어했다. 그러나 로제타 선교사의, 속칭 ‘언청이’라 일컫기도 했던, 구순구개열 수술을 보조하고 난 후로는, 감명을 받고 의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한다.[v] 그 당시 ‘언청이’는 불치병으로 여겨졌는데, 수술과 치료를 통해, 새 삶을 살게 되는 조선의 여성들을 바라보며, 자신이 그들에게, 희망을 주는 사람이 돼야겠다는 구체적이고 큰 꿈을 품기 시작한 것이다.

로제타는 자신이 만나는 조선의 여성들이, 하나님 안에서 주체성을 회복해서, 자신의 달란트를 최대한 발휘해, 세상에 유용한, 빛과 소금과 같은 존재가 되게 하려 애썼는데, 김점동에게서 그 희망을 발견하기 시작한다.


[i] 보구여관의 첫 여의사였던 메타 하워드(Meta Howard, 1862-1930)가 건강 악화로 사임하자, 1890년 10월 로제타가 후임으로 파송되었던 것이다. 도착한 다음 날부터 혼자 수많은 환자들을 돌보아야 했기에, 자신을 도울 보조원과 통역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때 영어를 잘하는 이화학당 학생 몇 명이 로제타를 돕기 위해 파견되었고, 그 중에 특별히 영어를 잘하며, 많은 도움을 주던 학생이 김점동이었다.

[ii] 박정희, ≪닥터 로제타 홀≫, 다산북스, 2015, 207쪽.

[iii] 그 동안의 박에스더 관련 글들에서, 박에스더의 생년이 1876년으로 되어있지만, 1900년 6월, 박에스더가 미국 체류 시 작성된, 인구조사서에 의하면, 1877년이라고 기록되어 있기에, 필자는 1877년을 따른다.

[iv] 언니인 김마리아(1873-1921)는 결혼 후, 정신여학당에 입학해 공부했으며, 졸업 후 1896년부터 모교의 교사로 활동하며, 여성들의 교육과 전도에 힘썼다. 동생 김배세(1886-1944)는 세브란스 간호사 양성 과정을 최초로 이수하고, 첫 정식 간호사로 세브란스 병원에서 근무했다.

[v] Rosetta S. Hall Ed., ≪The Life of Rev. William James Hall, M.D.≫, Eaton & Mains, 1897, 200쪽.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 3:16).
For God so loved the world that he gave his one and only Son, that whoever believes in him shall not perish but have eternal life. (John 3:16 N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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