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라델피아(형제사랑)는 영혼이 거룩해진 사람에게서 나옵니다. 필라델피아는 새 생명을 얻은 사람에게서 나옵니다. 영혼의 정결과 새 생명의 탄생은 분리되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을 다르게 표현한 것뿐입니다. 그러니까 진리의 복음을 순종하여 정결케 된다는 것은 말씀의 씨앗을 받아들여 새롭게 태어나는 것과 동일 선상에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새 생명으로 거듭났으니, 세상 사람들과는 다르게 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복음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으로부터 새로운 생명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요구되는 새롭고, 특별한 행동이 필요합니다. 바로 필라델피아(형제사랑)입니다. 우리가 정결하게 되는 것이나, 새 생명으로 태어나는 것은 모두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정결케하는 능력이 있고, 새 생명으로 태어나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가 필라델피아를 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말씀의 씨로 거듭났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거듭났습니다. 그것은 썩을 씨가 아니라, 썩지 않을 씨, 곧 살아 계시고 영원하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새로운 생명으로 다시 태어난 자들입니다. 그들은 모두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을 가진 자들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필라델피아(서로사랑)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고, 새 생명 안에는 필라델피아가 내재되어 있습니다. 서로 안에 형제사랑의 DNA가 잠재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당연히 형제들을 사랑해야 합니다. 마치 형제인 것처럼 사랑해서도 안 됩니다. 보혈로 맺어진 찐 형제입니다. 그냥 형제로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척 해도 안 됩니다. 피상적으로 해도 안 됩니다. 말과 감정 고백만도 아닙니다. 진실로, 마음으로부터, 깊은 진실성으로, 양팔을 활짝 벌려서, 모든 방법을 다해서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설화가 있습니다. 옛날에 두 형제가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유산을 나누어 각자 밭을 가지고 살게 되었습니다. 형은 결혼하여 가족이 있었고, 동생은 혼자 살고 있었습니다. 수확의 계절이 되어 두 사람은 각자의 밭에서 곡식을 거두어 볏단을 쌓아 두었습니다. 그날 밤, 형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아내와 자식들이 있으니 나중에도 나를 돌봐줄 사람이 있다. 하지만 내 동생은 혼자이니 더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형은 몰래 자기 볏단 몇 단을 지게에 지고 동생의 곳간으로 가져다 놓았습니다. 같은 밤, 동생도 잠을 이루지 못하고 생각했습니다. “형은 가족이 있으니 먹을 것이 더 많이 필요할 것이다. 나는 혼자니까 조금 덜 가져도 괜찮다.” 그래서 동생도 자기 볏단을 몇 단 지고 형의 곳간으로 조용히 옮겨 놓았습니다. 이 일은 여러 날 동안 계속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아무리 나누어도 두 사람의 볏단은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두 형제는 서로 볏단을 나르다가 들판 한가운데서 마주치게 되었습니다. 그제야 모든 사실을 알게 된 두 사람은 말없이 서로를 끌어안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 후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곳은 바로 그 두 형제가 서로 사랑으로 만난 그 자리다.” 형제사랑은 “내 것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필요를 먼저 생각하는 것,” 진짜 사랑은 드러나지 않는 곳에서 이루어진다. 하나님은 그런 사랑이 있는 자리를 거룩하게 하신다.
필라델피아(형제사랑)는 영원합니다. 말씀의 씨로 다시 태어난 우리가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은 풀과 같고 그 영광은 꽃과 같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은 영원히 있습니다. 하나님이 없는 인간의 사랑은 감정에 의존하고, 상황에 따라 변하다가 결국 식어버립니다. 풀과 꽃처럼 시듭니다. 그러나 말씀에서 난 형제사랑은 근원이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생명이 끊어지지 않고, 지속되고, 영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감정으로 형제사랑을 하지 말고, 우리 안에 심긴 말씀으로 형제사랑을 하여야 합니다.
아가페와 필라델피아는 차이가 있습니다. 아가페는 사랑의 “근원”이라 한다면, 필라델피아는 사랑의 “형태”입니다. 즉, 아가페가 뿌리라면 필라델피아는 열매입니다. 아가페는 추상적 신앙입니다. 말은 크지만 관계는 없습니다.
그러나 필라델피아가 있을 때, 실제 관계가 살아납니다. 공동체가 따뜻해집니다. 사랑이 눈에 보이게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