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na 24

증인으로서의 생활(A Life of Witness)

한국 선교에 있어 장로교의 두 명문가가 있는데 미국 남장로교회가 파송한 린튼 가문과 미국 북장로교회가 파송한 언더우드가가 있습니다. 오늘의 한국교회가 이만큼 성장 뒤에는 20대에 자신의 젊음을 바쳐 소명으로 복음 들고 동방에 조그마한 조선 미지의 땅, 우상을 섬기는 흑암에 땅을 찾아온 선교사의 헌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1859년 영국 런던에서 존 언더우드와 엘리자베스 그랜트 메리 사이의 6남매 중 넷째로 태어난 언더우드는 어려서부터 신앙적인 분위기에서 자랐습니다. 언더우드가 선교사 꿈을 갖기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였다고 합니다.

언더우드는 신비한 음성을 들었습니다. 조선에 갈 사람이 하나도 없다니 앞으로 조선은 어떻게 될까? 도전을 받은 언더우드는 두 번의 선교사 파송을 거절당하고 뉴욕에 있는 교회에 부임하는 일도 막히자 다시 마음을 정하고 다시 장로회 선교본부를 찾아갔을 땐 이전에 총무가 아니라 훗날 한국 선교를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은 엘린우드 박사가 총무로 부임하여 있었습니다. 언더우드는 해외 선교부 총무 엘린우드 박사의 지원과 맥윌리암스의 기부금 6,000달러를 받고 1884년 7월 28일 미국장로회 선교본부를 통해 한국 최초의 목회자 선교사로 임명되어 파송되었습니다.

언더우드는 1884년 12월 16일 샌프란시스코를 떠나 1885년 1월 25일 일본 요크하마에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약 3개월간 주로 헵번 선교사 사택에 머물면서 여러 사람을 만났습니다. 일본에 머물면서 미국 성서 공회의 루미스에게 최근 한국 상황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중에 특별히 성경을 우리말로 번역한 이수정도 만났습니다. 또 자신과 같은 목적을 가지고 한국에 들어가기 위해 준비하고 있던 귀중한 동지 감리교 선교사 아펜젤러를 만나 번역된 한국 성경을 가지고 1885년 4월에 번역된 성경을 들고 한국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외국 선교사가 선교지에 들어가면서 그 나라 말로 된 성경을 가지고 들어가는 놀라운 역사가 바로 한국에서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이때 한 명은 장로교 선교사로, 또 한 명은 감리교 선교사로 시작하였습니다.

한편 언더우드는 주한미국공사 푸트로부터 한국의 정치 상황이 갑신정변으로 불안정하므로 한국 입국을 연기하라는 충고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언더우드는 1885년 4월 5일 감리교 선교사 아펜젤러와 함께 부활주일에 제물포에 도착했습니다. 임신 중인 부인을 대동하였던 감리교의 아펜젤러 목사는 제물포 항에 머물다가 다시 일본으로 돌아갔으며 미혼이던 언더우드만이 위험을 무릎 쓰고 서울에 도착해서 버리진 땅 같은 사람들의 기억과 관심이 없던 미지의 땅 조선에 예수님의 유언과 같은 복음의 씨앗을 뿌리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주님 앞에 서는 날 주님께서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라고 칭찬하시는 그날까지 믿음으로 순종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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