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습니다. 그러므로 정신을 차리고, 삼가 조심하여 기도하십시오.”(벧전4:7) “그러므로 정신을 차리고 삼가 조심하여 기도하십시오.” 이것은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기도할 수 있도록 깨어 있으라는 의미입니다. 다른 성경에는 쉬지 말고 기도하라, 열심히 기도하라고만 되어 있지만, 베드로는 다른 수식어를 붙입니다. 정신을 차리고 삼가 조심하여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정신을 차리고란 무슨 뜻일까요? 정신이 온전한 상태에 있다는 뜻입니다. 올바른 판단력을 가지라는 뜻입니다. 자기 자신을 통제하고, 분별력을 유지하라는 의미입니다. 이 단어는 거라사에서 귀신이 쫓겨난 후 “정신이 온전하여 앉은” 사람을 묘사할 때도 사용되었습니다. 영적인 삶에는 절제하지 못함, 통제되지 않은 흥분이나 광기, 그리고 교만이라는 위험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준비하는 사람은 정신을 맑게 하고 양심을 깨끗하게 지켜야 합니다. 기도를 위하여 정신을 차리라는 것은 단순히 술에 취하지 말라는 정도의 말이 아닙니다. 단순히 졸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여기서 말하는 “정신을 차린다”는 것은 단순한 정신 집중이 아니라 다가올 하나님의 심판과 완성을 의식하면서 현재의 삶을 하나님의 빛 가운데 재정렬하는 것입니다.
“정신을 차리고, 깨어 기도하라”는 것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적용할까요?
기도하기 전에 내 마음의 상태를 살피는 것입니다. 생각과 판단을 바르게 하는 것입니다. 기도할 때 먼저 “지금 내 마음이 무엇에 사로잡혀 있는가?” “내가 원하는 것을 하나님께 관철시키려는 것은 아닌가?” “두려움, 욕심, 분노, 자존심 때문에 기도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를 살피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무감각해지지 않는 것입이다. 깨어 있다는 본래 술에 취하지 않은 상태에서 나온 말입니다. 따라서 영적으로는 세상에 취하지 않는 것입니다. 돈, 성공, 인정, 쾌락, 걱정, 분노 등에 마음이 취해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상태를 경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깨어 있는 사람은 자기 안에서 일어나는 작은 변화에도 민감합니다. “내가 요즘 왜 이렇게 기도가 안 되지?” “왜 저 사람을 계속 미워하지?” “왜 하나님보다 이것을 더 갈망하지?” 이것을 알아차리는 것이 영적 깨어 있음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들을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깨어 있는 기도는 내가 말만 하는 기도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들을 마음을 가지고 기도합니다. 그래서 “주님, 제가 원하는 것을 이루어 주십시오.”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주님, 제가 무엇을 원해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십시오.”라고 기도합니다.
깨어 기도하는 사람들은 또 무엇을 행해야 하나요? 서로 뜨겁게 사랑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서로 뜨겁게 사랑하십시오.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어 줍니다.”(벧전4:8) 깨어 기도하는 그리스도인들은 먼저 서로 뜨겁게 사랑해야 합니다. 여기서 “뜨겁게”(ἐκτενής, 엑테네스)라는 말은 단순히 감정적으로 뜨거운 사랑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이 단어는 운동선수의 “강하게 긴장된 근육”과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기본적인 이미지는 “뻗어 있는”, “팽팽하게 긴장된” 상태입니다. 따라서 이 형용사는 강렬함, 진지함, 그리고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여 힘쓰는 것을 나타냅니다. 뜨거운 사랑이란 힘든 사랑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어떤 사랑이 힘든 사랑일까요? 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뜨거운 사랑입니다. 어느 날 사막의 수도사 아가톤은 도시로 물건을 팔러 갔습니다. 그런데 길가에 병든 사람이 쓰러져 있었습니다. 아무도 그를 돌보지 않았습니다. 아가톤은 물건을 팔고 자기 수도처로 돌아갈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발걸음을 멈추었습니다. 방을 하나 빌렸습니다. 자신의 손으로 일했습니다. 번 돈으로 그 사람을 먹이고 돌보았습니다. 그렇게 네 달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회복된 후에야 수도처로 돌아갔습니다. 이것이 바로 베드로가 말하는 ‘뜨거운 사랑’입니다.
그 뜨거운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습니다. 사랑은 몇 번이고 기꺼이 용서합니다. 또한 잘못을 저지른 사람을 다른 사람들 앞에 드러내어 비난하고 정죄하기보다는, 그 사람이 수치와 정죄에 노출되지 않도록 보호할 방법을 찾습니다. 이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대하신 방식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번이나 부인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베드로를 나무라지 않았습니다. 부활하신 후 갈릴리 강가에서 세번의 질문을 하십니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를 세번이나 질문하십니다. 죄인을 끝까지 사랑함으로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고백하게 만드십니다. 뜨겁게 사랑하는 사람은 죄인들에게 사랑을 보여줌으로써 허물을 가립니다. 사랑하기가 어려운 순간에도 사랑하기 위해 내 힘을 다하는 것이 뜨거운 사랑입니다. 그리고 뜨거운 사랑은 바로 죄를 “덮어주는 것”입니다. 여기서 “덮는다”는 죄를 죄가 아닌 것으로 만든다는 뜻은 아닙니다. 죄를 묵인하거나 불의를 방치하라는 뜻도 아닙니다. 오히려 사랑 때문에 상대방의 허물을 함부로 폭로하고 정죄하지 않는 것, 그리고 가능한 경우 용서하고 관계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뜨거운 사랑은 상대방의 허물을 들춰내는 힘보다 덮어주는 힘이 더 큰 사랑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랑입니다.



